[사설]정부가 ‘낙하산 인사’ 않겠다는 서약서 쓸 차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4일 03시 00분


정부가 공기업의 복리후생 혜택을 절반으로 줄이고 부채를 대폭 감축한다는 내용의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 이행 계획’을 내놓았다. 38개 공공기관 노조는 복리후생 축소에 반발해 “정부의 경영평가를 거부하고 헌법 소원과 국제노동기구(ILO) 제소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역대 정권마다 시도한 공공기관 개혁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공공기관의 경영진부터 허리띠를 졸라매야 개혁에 시동을 걸 수 있다.

계획에 따르면 빚이 많은 18개 공공기관의 부채는 알짜 재산을 매각하거나 사업 조정을 통해 2017년까지 당초 계획보다 40조 원을 더 줄인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이 역시 만만치 않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국전력공사 사옥 등 공기업 본사 터만 7조 원어치 이상 시장에 쏟아져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헐값 매각 등의 논란이 벌어져 차일피일 미뤄지거나 몇 번 선거를 치르다 보면 흐지부지될 우려가 있다.

공공기관 노사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으로 만들어놓은 이면(裏面) 합의를 놔두고는 개혁 자체가 불가능하다. 공기업들은 과도한 복리 후생과 높은 임금을 숨겨 여론의 화살을 피하기 위해 이면 합의를 활용해 왔다. 강원랜드는 지난해 이면 합의를 통해 카지노 시설 확장 축하금으로 직원 1인당 100만 원씩 31억 원을 지급했다. 138조 원의 빚을 지고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도 비슷한 방식으로 각종 수당을 늘려줬다. 정부는 이면 합의를 공시하도록 요구하고 있으나 자진 신고가 미흡해 숨어 있는 특혜가 많을 것으로 보인다.

이면 합의는 ‘낙하산 사장’과 ‘금밥통’ 공기업 노조가 야합한 결과물이다. 선거에 공을 세운 정치인이나 퇴직 관료가 공기업으로 가면 노조는 반대 투쟁을 벌인다. 신임 최고경영자가 이면 합의를 통해 노조 요구를 들어주면 노조가 슬그머니 협조 모드로 전환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작년 11월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을 발표하던 날, 친박계 서청원 씨에게 지역구를 양보한 김성회 전 의원은 한국지역난방공사 사장에 선임됐다. 낙하산 중에는 전문성이 전혀 없는 공천 탈락자나 선거캠프 출신이 상당수다.

공기업 이사회가 정부 눈치만 보는 것도 문제다. 이러다가는 공공기관의 지배구조부터 뜯어고치자는 말이 나올 만하다. 공공기관들로부터 정상화 계획서를 받았으니 정부가 국민 앞에 낙하산 인사를 안 하겠다는 서약서를 쓸 차례다.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 이행 계획#복리후생 축소#낙하산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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