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 없어… 中 ‘바다거북’의 눈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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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출세 보증수표 해외 유학생… 국내파에 인맥-업무경력 뒤져
경기둔화로 일자리 줄자 구직난

영국에서 석사학위를 따고 지난해 중국에 돌아온 재클린 구 씨(24)는 상하이(上海)의 한 변호사사무실에서 월급 3000위안(약 54만 원)짜리 일자리를 얻었다. 그나마 4개월간 50번 이상 이력서를 써낸 끝에 잡은 직장이다. 지금 연봉대로라면 8년이 돼야 유학비로 쓴 30만 위안(약 5400만 원)을 벌 수 있다.

한때 출세의 보증수표로 통했던 중국의 ‘하이구이(海歸·귀국 유학생)’들이 이젠 취업난에 시달리고 있다. 경기 위축으로 일자리는 줄어드는데 하이구이 수는 큰 폭으로 늘고 있어서다. 하이구이와 발음이 같은 ‘바다거북(海龜) 수난’이 본격화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3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올해 중국에 귀환할 해외 유학생은 역대 최대치였던 2012년 27만2900명을 넘어서는 3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과 경쟁할 중국 신규 대졸자는 730만 명. 역시 사상 최대 규모다. 하지만 경제 성장률이 7.5% 안팎에서 정체되면서 일자리는 지난해보다 오히려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경기가 안 좋을수록 해외에서 선진 학문을 배우고 온 하이구이가 유리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실제로는 △베이징(北京)대나 칭화(淸華)대 등 국내 명문대 졸업생에게는 ‘관시(關係)’에서 밀리고 △미국 아이비리그 등 유명 대학 외에는 명망에서 치이고 △인턴을 안 했기 때문에 토종 대졸자보다 업무 경력도 뒤진다.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보험통계학 석사학위를 딴 양허보 씨는 중국에서 두 번째 석사과정을 밟을 예정이다. 그는 “칭화대나 베이징대 졸업생들은 동창생들로 구성된 관시를 갖고 있다”고 설명한다. 폐쇄적인 직장문화에서 외국 대학 출신이 성공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입사 자체도 쉽지 않다는 우회적 불만 표시다. 해외유학 연구기관인 ‘중국과 세계화 중심(CCG)’에 따르면 중국에서 직장을 잡은 하이구이의 59%가 “본국 대졸자보다 관시가 약하다”라고 답했다.

이직률이 높은 중국 기업의 특성상 업무 경험이 있는 신입사원을 선호하는 것도 하이구이들을 난처하게 하는 요인이다. 중국에서는 대학 4학년 때 대부분 실습을 나간다. 말이 실습이지 1년 내내 특정 회사에서 일반 직원과 똑같은 일을 한다.

지난해 외국으로 떠난 중국 유학생은 45만여 명으로 1년 전보다 12% 늘었다. 이 중 23만5600명은 미국에서 자리를 잡았다. SCMP는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지금까지 100만 명 이상의 하이구이가 중국에 돌아왔으며 그중 80%는 최근 6년 사이에 귀국했다고 전했다.

베이징=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
#바다거북#중국#유학생#하이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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