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킴 “감성의 물컵 다 찼을 때, 음악이 만들어져요”

  • Array
  • 입력 2014년 2월 4일 07시 00분


버클리음대 출신의 퓨어킴은 ‘어머니에게 노래를 들려주면 좋아하겠다’는 생각에 처음으로 노래를 만들었다. 취미에 불과했던 음악은 제작자이기도 한 윤종신의 품에 안기면서 인생의 전부가 됐다. 사진제공|미스틱89
버클리음대 출신의 퓨어킴은 ‘어머니에게 노래를 들려주면 좋아하겠다’는 생각에 처음으로 노래를 만들었다. 취미에 불과했던 음악은 제작자이기도 한 윤종신의 품에 안기면서 인생의 전부가 됐다. 사진제공|미스틱89
■ 싱글 ‘마녀 마쉬’ 발표한 퓨어킴

“천재성 있지만 음악으로 먹고살기엔…”
버클리 지도 교수 쓴소리에 한때 외도

슬픈 꿈에서 깬 후 샘솟은 음악 열정
윤종신의 눈에 띄어 ‘미스틱89’ 합류
독창적인 야생의 노랫말 세상에 어필


싱어송라이터 퓨어킴(김별·27)의 음악을 아는 사람이라면 꼭 하게 되는 생각. ‘참 특이하다’거나 ‘연구대상이야’라는….

퓨어킴이 인디 레이블을 통해 2012년 발표한 첫 한국어 앨범 ‘이응’은 ‘아 야 어 여 오 요 우 유 으 이’ 등 10개의 음절이 수록곡 각각의 제목인 노래들로 이뤄져 있다. 이 앨범엔 이런 노랫말이 있다.

‘사실 나는요/엄마 아빠가 짝짓기 하는 것을 봤어요’(어) ‘여물 씹는 은근한 입새와/점잖게 굴곡 있는 허리선/버릴게 하나 없는 완벽함/소한마리 사주세요’(여) ‘그런 거 안 해본 사람은 컴퓨터랑 결혼하고/컴퓨터랑 아기를 낳을 수 있다면/혼자인 지금보다는 낫지 않겠어요’(요).

기발하고 독창적이면서 참신한 가사, 버클리 음대 출신답지 않은 야생의 언어들. 그의 음악은 ‘퓨어킴’이란 사람을 궁금하게 한다.

퓨어킴을 음악으로 이끈 이는 바로 어머니다. 어머니는 일곱 살의 딸에게 한글을 자연스럽게 가르치기 위해 매일 메모를 써주었다. 이를 통해 한글을 깨친 퓨어킴은 “쪽지 내용을 노래로 만들어 어머니에게 들려주면 좋아하겠다는 생각”에 어머니의 메모를 노래로 만들었다.

퓨어킴의 음악적 자양분은 그렇게 뿌리내렸다. 중학교 땐 친구를 위해 노래를 선물해주고 싶다는 한 친구로부터 곡 의뢰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 때까지도 음악은 그저 취미에 불과했다.

퓨어킴은 고교 시절 한 신문사가 주최한 미국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응시해 오클라호마의 작은 시골마을 고등학교로 유학을 가게 됐다. 거기엔 한국인도, 할 일도 없었다. “영어도 잘 못하고 외롭게 있는” 그에게 마을 교회 목사가 기타를 가르쳐주었다. 이미 어린 시절 쌓은 음악의 감성은 기타와 오르간으로 도드라졌다. 그의 음악 실력은 금세 소문이 났다. 음악교사들은 “추천서를 써주겠다”며 음대 진학을 권했다. 퓨어킴은 버클리 음대를 떠올렸다. 어릴 적 “양파 언니의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버클리 음대에 대한 환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퓨어킴은 대학 이전까지 정식으로 음악을 배운 적이 없어 수업은 힘들기만 했다. 곡절 끝에 겨우 졸업한 그는 지도교수로부터 “천재성은 있지만, 음악으로 먹고 살기는 어렵겠다”는 쓴소리를 듣게 됐다. 음악을 “미련 없이 포기”하고, 할리우드의 한 웹 에이전시에서 일하며 “풍요롭게”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퓨어킴은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꿈”을 꿨다. 눈물을 흘리며 잠에서 깬 퓨어킴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걸 곡으로 만들어야겠다” 싶어, “버리려던 키보드를 꺼내” 곡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하고 싶은 건 음악”이라고.

퓨어킴은 곧바로 ‘맘 & 섹스’라는 미니앨범을 만들었고, ‘이응’도 내놓았다. 그런 그를 새롭게 눈여겨본 이가 윤종신이다. 퓨어킴의 음악은 윤종신에게 마성처럼 다가왔고, 윤종신은 그를 자신의 음반레이블 미스틱89로 이끌었다.

퓨어킴이 윤종신을 만나 ‘세상’ 밖으로 처음 내놓은 작품은 최근 싱글 ‘마녀 마쉬’. 윤종신은 자신이 곡을 쓰고, 퓨어킴에게 ‘마녀’를 테마로 노랫말을 쓰게 했다. 그렇게 탄생한 가사.

‘주먹만한 사랑만 하려는 세상에/풍선만한 나는 너무 큰 건가요’.

“요즘 젊은이들은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하지 않고, ‘이렇게 하는 게 맞을 거야’라고 그럴듯하게 들리는 것을 따른다. 나는 누군가, 무엇을 못하고 또 하고 싶은가 하는 문제를 잘 알아야 한다는 의미로 ‘마녀 마쉬’를 썼다. 난 음악을 하면서 독창적이거나 어려운 걸 하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저 내 감성의 물컵에 조금씩 ‘무엇’이 차는데, 그것이 다 찼을 때 음악이 만들어진다.”

퓨어킴은 꾸준하고 오랜 시간, 음악을 하고 싶다는 꿈을 자신의 물컵에 조금씩 조금씩 담아가는 중이다.

김원겸 기자 gyummy@donga.com 트위터@ziodadi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