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정미경]위안부 소녀상의 불끈 쥔 두 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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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경 워싱턴 특파원
정미경 워싱턴 특파원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이 나라가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것을 자명한 진실로 받아들이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명연설은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1963년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워싱턴 평화 대행진 연설도 그렇다. 최근 킹 목사 탄생 85주년을 맞아 미국에서는 킹 목사의 연설을 재조명하는 열기가 뜨겁다.

킹 목사 연설은 흔히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게티즈버그 연설,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 연설과 함께 미국 3대 명연설로 꼽힌다. 그러나 뚜렷한 사회적 변화를 일궈냈다는 점에서 링컨이나 케네디 연설보다 영향력이 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연설 이듬해 미국 민권법이 통과됐고 학교 공공기관 등에서 인종차별 철폐 조치가 시행됐다.

킹 목사의 연설은 미국 역사의 한 획을 그었지만 탄생하지 못할 뻔했다. 백인들의 반발 때문이었다. 당시 워싱턴 한복판에서 흑인 지도자가 한 연설은 백인들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케네디 대통령조차 킹 목사에게 연설을 그만두거나 톤을 낮추도록 종용했다. 이런 난관을 뚫고 킹 목사는 링컨기념관 단상에 올라 인종차별을 극복하고 미국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했다.

지난달 말 로스앤젤레스(LA) 출장길에 위안부 소녀상을 찾았을 때 킹 목사의 연설이 문득 떠올랐다. 물론 킹 목사의 연설과 위안부 소녀상을 단순히 비교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소수인종 사회의 긍지의 표상이자 과거사를 바로잡으려는 역사인식의 성과물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해외에 처음 세워진 위안부 소녀상은 LA 인근 글렌데일 시립공원 앞뜰에 있다. 지난해 7월 세워진 뒤 일본인들이 종종 몰려와 소녀상 앞에서 시끄럽게 시위를 벌이지만 이날은 조용했다. 소녀상 주변은 꽃다발들로 가득했다. 공원 관계자는 “누가 놓고 가는 것인지 몰라도 꽃다발이 끊이지 않는다”고 했다.

킹 목사의 연설처럼 위안부 소녀상 역시 반대를 뚫고 그 자리에 우뚝 섰다. 일본 내 반대세력과 재미 일본사회는 소녀상 철거 청원을 백악관에 올리고 글렌데일 시와 각종 교류 프로그램까지 끊었다. 일본의 반대 로비가 극렬해지면서 인근 부에나파크 시의 소녀상 건립 계획은 지난해 시의회에서 부결됐다. 부에나파크 시의회 관계자는 “일본인들이 1000여 통의 반대 편지를 보내고 100여 명이 청문회에 몰려와 반대 의견을 내며 부결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말했다.

글렌데일 소녀상은 한인 사회의 노력으로 건립됐지만 철거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만큼 일본의 로비는 집요하다고 한인사회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일본의 반대에도 철거되지 않으려면 미국 주류 사회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게 필요하다. 킹 목사의 연설이 미국을 움직인 것은 흑인뿐 아니라 백인의 관심과 지지였다.

공원에서 만난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그런 게 있느냐”며 소녀상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다. 설사 알고 있다고 해도 “소녀상 때문에 시끄러워지는 것은 원치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일본은 ‘한일 간 문제인데 왜 미국에 소녀상을 세우느냐’는 논리로 반대운동을 펼친다. 전문가들은 소녀상을 한일 역사 갈등의 문제로 접근하면 미국인들의 주목을 끌기 힘들다고 말한다. 미국인들이 관심이 많은 인권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소녀상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불끈 주먹 쥔 두 손이었다. 어린 소녀의 당찬 결의를 보여준다. 그 꼭 쥔 두 손에 부끄럽지 않도록 한국과 재미 한인사회는 미국인들의 관심 어린 눈길을 끌어와야 할 책무가 있다.

정미경 워싱턴 특파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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