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승건]장애인이 모두 친구라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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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건 스포츠레저부 차장
이승건 스포츠레저부 차장
“이 ××가 애자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야, 애자야!”

초등학생 3명이 길에서 다투고 있었다. 뭘 잘못했는지는 몰라도 그중 한 명이 다른 두 명으로부터 공격을 당하는 상황 같았다. 천진난만해 보이는 한 아이의 입에서 ‘애자’라는 말이 거리낌 없이 튀어나왔다. 귀를 의심했다. 아이는 저 말을 어디서 들은 걸까. 뜻은 아는 걸까. 설마 부모로부터 배운 건 아닐까….

‘애자’는 장애자에서 ‘장’자를 뗀 말이다. 1981년 심신장애자복지법 제정으로 장애자라는 용어가 사용된 뒤부터 쓰였을 테니 역사가 꽤 길다. 1988년 장애인복지법으로 개정된 후 장애인이라는 용어가 사용되면서 장애자라는 단어 자체가 장애인을 비하하는 개념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애자’라는 비속어가 여전히 통용되는 것을 보면 나쁜 말의 생명력은 참으로 질기다.

1988년 서울 장애인올림픽(패럴림픽)을 계기로 장애인 인권운동이 본격화되면서 ‘장애우(友)’라는 말이 등장했다. 장애인을 친구처럼 가깝게 여기고 그들과 함께하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신문 칼럼이나 방송을 통해 이 말을 사용하는 교수, 정치인, 연예인들도 꽤 있다. 기사 검색을 해 보니 본보도 숱하게 이 표현을 받아 적어 왔다.

취지는 좋았을 것이다. 장애인을 배려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이렇게 썼을 것이다. 하지만 장애우라는 표현은 쓰면 안 된다. 무엇보다 장애인 스스로가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자신을 소개하면서 “저는 장애우입니다”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게다가 이 말에는 장애인을 바라보는 비장애인의 동정적인 시각이 담겨 있다. 착하고 마음이 넓은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돌봐줘야 한다는 시혜의식의 산물이다. 같은 맥락에서 환자를 환우라고 부르는 것도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한국스페셜올림픽위원회(회장 나경원)는 지난해부터 ‘블루(BLUE)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Beautiful Language Use will Echo(아름다운 말은 울림이 됩니다)’의 약자로 장애인을 비하하는 용어를 삼가고 정확한 표현을 사용하자는 의도다. ‘백치’나 ‘정신박약아’ 대신 ‘지적장애인’을, ‘장애자’나 ‘장애우’ 대신 ‘장애인’을 쓰자는 것이다. 이 단체 관계자는 “올해 더 적극적으로 블루 캠페인을 벌일 계획”이라고 했다. 사족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장애자’도 잘못된 표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놈 자(者)’가 포함돼 있어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과학자나 소비자는 뭔가. 이 글을 쓰고 있는 기자는 또 뭔가. 다만 ‘애자’에서 보듯 본래 의미와 달리 쓰이고 있기에 바꿀 필요가 있어 보인다.

모든 장애인이 친구가 될 수는 없다. 억지스러운 말 한마디를 갖다 붙이기보다는 비장애인과 똑같은 사회 구성원이라고 생각하는 게 진정으로 장애인을 배려하는 것이다. 물론 그게 훨씬 어려운 일이다.

이승건 스포츠레저부 차장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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