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알바청년 “손님들과 수다떨다 점장됐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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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25 논현중앙점 강훈씨

GS25 논현중앙점을 운영하는 강훈 씨가 단골손님들의 메모가 걸려 있는 고객 게시판 앞에서 환하게 웃고있다. 아르바이트를 하던 그는 이제 어엿한 점장으로 일하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GS25 논현중앙점을 운영하는 강훈 씨가 단골손님들의 메모가 걸려 있는 고객 게시판 앞에서 환하게 웃고있다. 아르바이트를 하던 그는 이제 어엿한 점장으로 일하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점장님 착해요.” “비가 오네…흐앙 배고파요.”

서울 강남구 학동로에 자리 잡은 GS25 논현중앙점.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빨랫줄에 매달린 단골 손님들의 메모가 반긴다. 카페에서나 보던 고객 게시판을 설치한 사람은 점포주 강훈 씨. 30세 청년인 그는 지난해 6월부터 편의점을 경영하는 ‘청년 사장’이다.

강 씨는 이미 아르바이트생 시절에 편의점을 카페처럼 꾸며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군 제대 직후인 2006년 말부터 경기 수원 집 근처의 GS25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학교를 마친 후인 2010년에는 전공(유아교육)을 살려 6개월 동안 한 유치원의 ‘7세 사슴반’ 선생님으로 일했다. 일은 재밌었지만 여성교사 위주의 유치원 문화에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유치원 일을 그만뒀을 때 마침 편의점에서 “다시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연락이 왔다. 사실 강 씨는 오래전부터 ‘특별한 알바생’이었다. 밸런타인데이가 되면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초콜릿 포장을 어떻게 할지 의견을 냈다. 적극적인 그에 대한 소문은 본사에까지 나 있었다.

2012년 4월 GS25는 강 씨에게 ‘창업훈련생’ 1기 프로그램에 참여할 것을 제안했다. 이 프로그램은 훈련생을 뽑아 1년 동안 편의점 경영 훈련을 시키는 것이다. 교육 후 본인이 원할 경우 직접 편의점을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미 편의점을 자기 가게처럼 생각했던 강 씨는 최고의 적임자였다. ‘시험 프로젝트’인 1기 프로그램의 유일한 훈련생이었던 그는 최초의 창업훈련생 출신 경영주가 됐다.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어요. 경영주가 느끼는 부담은 아르바이트할 때와는 차원이 달랐죠. 제가 직접 아르바이트생을 뽑는 것도 부담이었고요. 유통기한이 단 하루인 김밥을 왕창 버려야 할 때면 얼마나 난감하던지….”

밤을 새우며 일하는 것도 고역이었다. 강 씨는 지금도 매일 오후 10시부터 다음 날 아침을 지나 오후 1시까지 편의점을 지킨다. 잠깐 동안 눈을 붙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언제나 밝다.

“저는 일이 힘들 때면 제가 연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럼 저도 모르게 힘이 나죠.”

긴 밤을 견디는 원동력이 연기라니, 거기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강 씨의 꿈은 ‘목소리로 연기하는’ 성우다. 중고교 시절부터 성우를 동경했고 군대에 있으면서 성우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지금도 홀로 편의점을 지킬 때면 틈틈이 연기 연습을 한다. 편의점을 찾는 손님들이 때로 상대 배우가 된다. 계산을 하는 잠깐의 시간에도 그는 “머리 잘랐네요”라며 인사를 건넨다.

성우가 될 꿈을 꾸지만 편의점을 경영하는 일도 즐겁다. 강 씨는 “제가 원래 좀 욕심이 많아요”라며 웃었다. 성우라는 꿈과 편의점 경영주를 조화시키는 그의 비결은 뜻밖에도 ‘타협’이다.

“현실과 타협하며 꿈을 키우는 게 옳다고 생각해요. 젊은 사람들이 아예 꿈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현실에 대한 아무런 대책 없이 꿈만 찾는 것도 오래가기 힘들거든요. 중요한 건 긍정적인 마음, 그리고 현재를 즐기는 자세죠.”

강 씨는 모두가 고향을 찾는 이번 설날 연휴에도 내내, 밤마다 편의점을 지켰다. 미소를 가득 머금은 ‘착한 점장’ 역할의 배우가 되어. 그 덕분에 그는 잠들지 않고도 꿈을 꿀 수 있었다.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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