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보범죄에 노출된 주민번호, 이대로 계속 쓸 순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3일 03시 00분


‘민증 까자’는 말을 흔히 듣는다. ‘주민등록증을 꺼내 생년월일을 확인해보자’는 뜻이다. 주민등록번호에 나이 생일 성별 출생신고지 등 개인에 관한 핵심정보가 담겨 있어 이런 말이 나왔다. 이번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은 거의 전 국민의 주민번호가 사실상 전면 노출됐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한 번 유출되면 회수가 불가능해 일각에선 주민번호 폐지 주장까지 나온다.

현행 주민등록 시스템은 1962년 행정 편의를 위해 도입됐고 1968년 북한의 청와대 습격사건 이후 개인별 주민번호가 주어졌다. 관리와 이용이 편리해 웬만한 개인정보는 그 위로 층층이 쌓여 있는 구조다. 이 때문에 주민번호가 노출되면 어떤 개인정보도 안전할 수 없을 만큼 보안에 취약하다. 개인의 금융 및 신용정보는 물론이고 병원, 학교를 해킹해 병력(病歷)과 성적표를 뒤질 수도 있다. 이번 사태로 국민 대부분이 사생활 침해와 정보범죄 위험에 노출된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외국 사례를 참고해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이 없는지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미국에서는 사회보장번호가 주민번호와 같은 역할을 한다. 독일에서는 10년마다 신분증을 전면 갱신하고 있다. 국내에서 이미 유출된 주민번호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인 채 수집과 이용 관리에 대한 통제만 강화하는 식이어서는 국민을 안심시킬 수 없다. 개인식별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바꾸거나 최소한 기존 주민번호에 별도의 암호코드를 추가해야 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년 전부터 “주민번호제도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강력한 개인 식별 시스템”이라며 주민번호 제도 전체를 뜯어고치라고 권고하고 있다. 식별기호에 아무 의미가 없도록 임의의 숫자 조합으로 대체하고, 사유가 있으면 법원 허가를 얻어 이 기호를 바꿀 수도 있게 하라는 것이다. 헌법재판소 산하 헌법재판연구원도 지난해 “주민번호는 개인정보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해 기본권의 침해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유엔 인권위 역시 2008년 주민등록제도의 재검토 및 주민번호 제공의 제한을 권고했다.

반세기 가까이 사용해온 주민번호 시스템을 교체하려면 상당한 비용과 불편이 따를 것이다. 하지만 본질적 해결책 없이 방치하다가는 장차 주민번호가 정보범죄 재앙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정보사회로 가는 길목에서 제도 개편에 따른 비용과 편익을 ‘열린 자세’로 비교해 선택해야 한다.
#개인정보유출#주민등록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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