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희균]점을 보는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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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균 정책사회부 차장
김희균 정책사회부 차장
타로 점을 좋아하는 친구가 한 명 있다. 외국에 가도 꼭 짬을 내 타로집을 찾아다닐 정도다. 프랑스에 다녀와선 집시 점쟁이가 “인생에 남자가 없다”고 했다며 울적해하더니, 최근 미국에 다녀와서는 히피 점쟁이가 “곧 남자친구가 생길 거라 했다”며 신바람이 나 있다.

신점(神占)에 집착하는 중년 남자도 한 명 있다. 누가 봐도 성공한 고위직인데 혼자 점 보러 다니는 게 낙이다. 처음 간 점집에서 몸에 큰 병이 있다는 말을 듣고 건강검진을 해서 암을 발견한 이후 점을 신봉한다. 새해 인사로 “신년 운수를 봤냐”고 물었더니 “승진 운이 있다더라”며 싱글벙글했다.

연초라 그런지 주변에서 점 본 이야기가 부쩍 많이 들려온다. 점을 자주 보는 이들의 유형을 살펴본 결과 한 가지 공통점을 찾았다. 좋은 말, 바라던 말을 들을 때까지 점을 보러 다닌다는 거다. 특히 뭔가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할 때는 이미 마음속에 정해 놓은 답을 점쟁이의 입을 통해 들을 때까지 점집을 찾는다. 이미 이사할 집을 정해 놓고도 ‘지금 사는 곳보다 북쪽으로 옮겨야 좋다’는 점괘를 들어야 안도하는 식이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인간사에서 조금이라도 앞날을 내다보고 싶어 하는 심리는 예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비슷하다. 모두가 힐링을 외치는 현대사회에서는 점을 통해 마음의 안식을 찾으려는 이들도 많다.

예전엔 타로 점에 집착하는 친구에게 그동안 점 본 돈을 결혼중개업체에 썼으면 남자를 10명은 만났을 거라고 놀렸다. 하지만 요즘은 좋은 남자를 만날 거란 말에 활력을 얻는 친구를 보며 복채에도 효용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즐거움을 주는 말, 나아가 긍정적인 자기암시로 이어지는 말이라면 충분히 돈값을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최근 만난 진로상담 전문가가 들려준 이야기로 더 굳어졌다. 공부를 꽤 잘하는 고교생을 상담하는데 이 아이가 “의자에 앉아도 돼요?”로 시작해 “물 마셔도 돼요? 화장실에 가도 돼요? 연필로 쓸까요, 볼펜으로 쓸까요?” 같은 질문을 계속했다. 알고 보니 부모에게 “너는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다. 그렇게 살아서 뭐가 되겠냐”라는 말을 듣고 자란 탓이었다. 부정적인 자기암시가 몸에 배어 사소한 것도 결정을 못 하는 지경이 된 것이다.

좋은 말을 듣고 싶어 하고, 또 그런 말을 통해 긍정적인 자아상을 만들어 가고자 하는 건 아이나 어른이나 다를 바 없다. 2 더하기 2가 왜 4냐고 묻는 에디슨에게 저능아라고 비난한 교사만 있었다면 우리는 전기를 얻지 못했을지 모른다. 에디슨이 발명왕이 된 것은 그의 어머니가 “네가 뛰어나서 학교 공부가 너를 따라오지 못하는 거야. 너는 기발한 생각을 잘한다”라고 격려한 덕이었다.

이틀 뒤면 차례상을 둘러싸고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이왕이면 좋은 영감을 줄 수 있는 말, 긍정적인 자기암시를 심어 줄 수 있는 덕담을 주고받으면 좋겠다.

교육학에서 말하는 로젠탈 효과(Rosenthal effect), 심리학에서 말하는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를 떠올리면 된다. 다른 사람의 기대나 관심에 부응해 실제로 능률이나 결과가 좋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좋은 말이 주는 발전적인 자기암시 효과는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

다만 외모가 너무 별로라서 고민하는 사춘기 조카에게 “넌 미스코리아 진이 될 거야”같이 턱없는 말을 했다가는 썰렁한 명절의 주범이 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덕담도 과유불급이다.

김희균 정책사회부 차장 f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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