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옥의 가슴속 글과 그림]진짜 책벌레 되는 법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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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슈피츠베크. 책벌레. 1850∼59년.
카를 슈피츠베크. 책벌레. 1850∼59년.
그림의 배경은 어두운 도서관 실내.

흰 머리의 늙은 남자가 사다리에 올라선 채로 열심히 책을 읽고 있다.

남자는 한평생 오직 책만 읽으면서 살아온 책벌레다. 19세기 독일 화가 카를 슈피츠베크는 남자가 지독한 책벌레라는 정보를 기발한 방식으로 알려주고 있다.

먼저 책으로 가득 찬 책장 앞에 세워진 사다리가 눈길을 끈다. 남자가 책이라는 거대한 산을 정복하려는 의지에 불타고 있다는 뜻이다. 남자의 왼손은 책을 펼치고, 오른손은 책을 들고, 왼팔과 옆구리, 두 무릎 사이에는 책을 낀 상태로 책에 얼굴을 파묻고 있다. 독서를 즐기기보다는 책을 탐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끝으로 책장 왼쪽 위에 ‘형이상학(metaphysics)’이라는 글자가 적힌 장식판이 보이는데 이는 남자가 물질세계 너머 존재의 근본원리를 연구하는 학자라는 것을 암시한다.

슈피츠베크는 진리를 탐구하는 학자를 찬미하기 위한 의도에서 이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현실과 담을 쌓고 병적으로 지식만 얻으려는 구세대 지식인들을 비꼬기 위해 이 풍자화를 그린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수상록’에서 책만 탐하는 책벌레들을 이렇게 꾸짖는다.

‘하루 종일 다독(多讀)으로 보내는 부지런한 사람은 점차 생각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마치 늘 말을 타고 다니는 사람이 나중에는 걷는 것을 잊어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 그들은 책을 많이 읽은 결과 바보가 된 인간이다.’

화가와 철학자는 도서관의 책만 읽지 말고 자연이라는 책, 인간이라는 책도 함께 읽어야만 진짜 책벌레가 될 수 있다고 한목소리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명옥 한국사립미술관협회장
#도서관#책벌레#카를 슈피츠베크#풍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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