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배운 괴물들의 사회 “넌, 세상물정을 몰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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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물정의 사회학/노명우 지음/308쪽·1만6800원/사계절

한국 사회에서 자기계발서 열풍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혼자만의 성공을 설파하는 자기계발서가 약속한 길을 따라가면 성공이 보장될까. 저자는 “성공의 단위는 하늘이 돕는 개인뿐이라는 오래된 사유의 관습과 이별할 때, 우리는 비로소 복지국가와 만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조성민 그림
한국 사회에서 자기계발서 열풍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혼자만의 성공을 설파하는 자기계발서가 약속한 길을 따라가면 성공이 보장될까. 저자는 “성공의 단위는 하늘이 돕는 개인뿐이라는 오래된 사유의 관습과 이별할 때, 우리는 비로소 복지국가와 만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조성민 그림
“세상물정 모르는 소리 하네.”

한국에 살면서 이 소리 안 들어본 사람 있다면, 손들어 보자. 살짝만 순진하거나 한가한 소리를 하면 꼭 돌아오는 답. 때론 세상을 바꾸자는 정당한 권리 요구에도 저 딱지를 붙여 입을 틀어막기도 한다.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인 저자도 피해갈 수 없었다. 우리가 사회문제 해법을 사회학에서 구하지 않은 지는 오래 됐다. 오히려 저자의 귀에는 “왜 사회학자들이 해석하는 세계와 내가 경험한 세상은 어긋날까”, “사회학자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이론을 내가 안다고 나의 삶이 바뀌는가”란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그리고 “사회학자는 나보다 세상물정을 알지 못해”란 소리는 비수가 돼 꽂혔다.

저자는 지난해 10월 출간한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에서 마흔여덟 나이에 혼자 살고 있는 자신의 경험에 사회학 이론을 접목한 ‘자전적 사회학’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번 책에선 삶 전체로 자전적 사회학의 범위를 넓혔다. 그는 부지런히 세속 풍경을 채집하고 탐정처럼 고립된 생각, 상식, 사건 속에서 전체를 꿰뚫는 실마리를 찾아낸다.

글도 연구실이 아닌 삶의 현장 한가운데서 태블릿PC로 썼다. 도쿄 롯폰기힐스 앞 스타벅스에서 시작해 일산 웨스턴돔의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 서울 지하철 3호선 안, 일산과 강남을 오가는 M7412번 버스 안이 그 무대였다.

저자가 풀어낸 25가지 화두 중 ‘성숙’부터 살펴보자. 그는 오늘날 한국을 ‘배운 괴물들의 사회’라고 진단한다. 그가 본 모습은 이렇다. 우리는 사람이 배워야만 금수와 구별된다고 믿었고 미친 듯이 배웠다. 읽고 쓰는 능력이 없는 사람은 고작 1.7%밖에 없고 대학진학률은 81.9%, 인구 1만 명당 박사는 2.1명이다. 그렇지만 지하철에서는 ‘싸가지 없는 애들’과 ‘추잡스러운 중년’과 ‘나잇값 못하는 늙은이들’이 뒤섞여 있단다.

저자는 철학자 칸트의 ‘칸트의 교육학 강의’를 인용해 인간이 야만에서 벗어나 성숙한 인간이 돼야 한다고 역설한다. 배움에서 입신양명의 도구가 아니라 성숙한 인간으로의 완성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는 것. 지금처럼 팽창과 성장에 눈이 멀면 범죄를 저지르는 괴물 생산 공장을 멈춰 세울 수 없단다. 배웠지만 성숙하지 못한 인간이 못 배웠지만 성실한 사람들의 삶을 통째로 파괴하는 괴물 짓을 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자고 경고한다.

성숙하지 못한 인간들은 소비 앞에 서서 침을 질질 흘린다. 과시적인 소비가 만들어 낸 유행은 사유를 지배하더니 이제 세상을 바꿀 가능성마저 가로막고 있다는 분석은 설득력 있다. “유권자일 때 유효하던 1인 1표제라는 민주주의의 놀라운 평등은, 소비자로 변화하자마자 구석에 처박힌다. (중략) 부자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관심이 커질수록 부자들의 불법 상속에 무관심해지고, 쇼핑몰에 습관적으로 북적대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투표율은 낮아지고, 고객상담실에 전화를 걸어 소비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공적인 일에 분노하는 사람들은 줄어드는 법이다.”

저자는 타락한 처세술에 새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책을 썼다면서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처세란 리얼리티와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먹고 자라기 때문이란다. 사회적 문제를 외면한 채 자기계발서만 손에 쥐고 나 혼자 살겠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에게 묻는다. “(자기계발서) 책을 덮고 한번 물어보자. 이건희의 성공은 자기계발서 덕택인지, 아니면 이건희의 아버지가 이병철이었기 때문인지.”

새해 첫날 영혼 없는 신년 인사가 담긴 SNS에 시달렸거나 새해엔 삶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길 기도하며 떠오르는 태양을 스마트폰에 담았던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세상물정의 사회학#사회문제#성숙한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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