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역앞 상가 건물… 서촌 주택가 작은 한옥… 젊은 작가들의 새 예술 해방구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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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역 근처 상가 빌딩에 자리 잡은 ‘커먼센터’(위쪽)와 서촌 한옥집을 개조한 ‘시청각’ 등 30대 작가와 기획자들이 운영하는 색다른 전시공간이 문을 열었다. 기존 갤러리와 대안공간들이 미처 소화하지 못한 젊은 세대의 작업을 조명할 계획이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서울 영등포역 근처 상가 빌딩에 자리 잡은 ‘커먼센터’(위쪽)와 서촌 한옥집을 개조한 ‘시청각’ 등 30대 작가와 기획자들이 운영하는 색다른 전시공간이 문을 열었다. 기존 갤러리와 대안공간들이 미처 소화하지 못한 젊은 세대의 작업을 조명할 계획이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겉모습만 보면 신생 갤러리인 줄 모르고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낡고 오래된 건물 외양부터 이른바 ‘화이트 큐브’라 불리는 백색의 우아한 전시공간과 거리가 멀다. 안으로 들어가면 세월이 남겨놓은 일상의 흔적과 생활의 냄새가 관객을 맞는다. 과거를 간직한 낯선 장소와 현대미술 작품들이 천연덕스럽게 한 몸을 이룬다.

서울 영등포역에 가까운 4층 건물을 독차지한 ‘커먼센터’와 서울 서촌의 작은 한옥에 자리한 ‘시청각’ 등 개성 있는 전시공간이 잇달아 문을 열었다. 이곳들은 기획과 전시, 판매를 염두에 두면서도 상업성에 치중한 일반 갤러리와 차별화를 지향하는 공간들로 30대 작가들과 큐레이터가 운영한다. 불황의 늪에 빠진 미술계에서 설 자리를 찾기 어려운 젊은 작가들을 응원하고 또래 세대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창구가 생겼다는 점에서 반가운 현상이다. 독특한 공간의 출현이 시각문화예술의 활동 범주를 넓히는 동시에 미술시장의 관습에 도전해 새 뿌리를 내릴 수 있을지가 주목된다.

○ 상가 건물을 점령하다

커먼센터는 국내에서 보기 드물게 예술가들이 주도하는 공간이다. 작가 김영나(34) 김형재(34) 이은우(31)와 기획자 함영준 디렉터(35)가 운영위원을 맡아 내년 3월 공식 개관할 계획이다. 기존의 갤러리나 대안공간의 경우 20, 30대 작가들이 편하게 대화를 나누고 소통할 수 있는, 같은 또래 큐레이터가 거의 없다는 점에 착안해 새 공간을 마련했다.

이들이 빌린 4층 건물은 백화점과 지하철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음에도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한 탓에 썰렁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부동산과 다방 간판이 여전히 걸려 있는 상가건물 1층에선 ‘적합한 종류’를 주제로 한 개관 준비전이 펼쳐지고 있다. 벽지와 천장이 뜯어져나간 어수선한 실내에 그래픽 디자이너 김영나가 다른 전시에서 사용했던 물건을 재활용한 설치작품을, 이은우가 장차 사용할 만한 수납공간과 가벽을 선보였다. 내년 1월 18일까지. 070-7715-8232

함영준 디렉터는 “1990년대 말 대안공간이 생기면서 큐레이터의 활동과 기획이 활성화됐으나 2000년대 들어선 다소 정체된 느낌이 든다. 아티스트들이 운영하는 공간인 만큼 작품 판매 후 수익을 작가에게 더 많이 배분하고 이를 통해 작업이 더 활성화되는 순환구조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 한옥에 스미다

독립큐레이터 현시원 씨(33), 에디터 출신 안인용 씨(33)가 공동 운영하는 ‘시청각’은 서울 통인시장 부근 주택가에 자리 잡았다. 초록 철문에 이어 한옥 대문을 지나면 안방 마루 문간방이 콘크리트 마당을 둘러싼 ‘ㄷ’자 한옥이 한눈에 들어온다. 1947년 지은 살림집을 창작 그룹인 ‘길종상가’ 박길종 씨가 서까래와 문짝 등 소박한 외형을 그대로 살린 전시공간으로 꾸몄다.

개관기념전엔 Sasa[44], 남화연, 박길종, 슬기와 민, 잭슨 홍, 옥인컬렉티브, 기계비평가 이영준, 무용가 서영란 등 8팀이 참여했다. 각기 도심 속 인왕산을 주제로 한 신작과 퍼포먼스를 진행했는데, 한옥 곳곳에 그 작품을 짜임새 있게 배치한 점이 신선하다. 설치 영상 드로잉 등을 뭉뚱그린 전시의 제목은 ‘no mountain high enough’전으로 내년 1월 25일까지 이어진다. 작가 중심의 전시공간으로 운영하면서 워크숍 등을 통해 예술담론의 산실이 되는 것이 목표다. 02-730-1010

고미석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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