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영호]경계성 기형 환자에게도 관심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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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성균관대 의대 삼성서울병원 교수 미국 역학·예방의학 학술지 편집위원
김영호 성균관대 의대 삼성서울병원 교수 미국 역학·예방의학 학술지 편집위원
연말연시가 다가오면 불우 이웃에 대한 온정을 호소하는 얘기를 언론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도움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으면서 정작 본인은 무척 괴로운 사람들이 있다. 바로 정상과 기형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어정쩡한 증상을 가진 사람들이다.

예를 들어 한쪽 귀가 없거나 구순구개열(언청이)인 사람은 주위의 동정을 받고 자선 단체 등에서 치료비 보조를 받으며 정상인의 모습을 갖추도록 배려받지만 턱이 약간 틀어졌거나(안면 비대칭), 약간 크거나(주걱턱), 약간 작으면(무턱) 보험 적용도 되지 않고 자력으로 치료를 받아야 한다. 혹자는 ‘턱이 약간 틀어진 게 그렇게 심각한 문제인가’라고 의문을 가질 수 있겠지만 턱이 5mm만 틀어져도 학교를 다니거나 사회생활을 할 때에 느끼는 외모에 관한 고민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심각하다.

의료계에서는 이렇게 어정쩡한 기형을 지닌 사람을 ‘경계성 기형 환자’로 정의한다. 즉, 심각한 기형은 아니지만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기에는 신체의 외모나 기능에 문제가 있는 환자로 낮은 자존감과 사회 적응도를 보이는 사람이다.

경계성 기형 환자 문제는 뼈에 이상이 있는 것만 생각하기 쉬우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예를 들어 주걱턱 환자의 경우에는 말을 할 때 정상인과 다른 발음을 하여 학교 친구들의 웃음거리가 되기도 한다. 튀어나온 아래턱과 혀의 관계로 인하여 ‘ㅅ’(영어로는 ‘s’) 등 마찰음 발음이 잘되지 않아 ‘선생님’을 ‘천챙님’으로 ‘스포츠’를 ‘츠포츠’로 발음하게 된다. 어릴 때부터 외모와 발음 문제 때문에 학교생활 내내 주눅 들어 다니던 아이들은 심각하게 낮은 자존감을 가지게 되어 비록 우수한 학력으로 사회에 진출하여도 밝은 사회인으로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

또 귀가 아예 없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귀 모양이 정상인에 비하여 약간 이상한 사람이 가지는 고통 또한 작지 않다. 이 경우 역시 귀 모양도 중요하지만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청각 이상을 호소하는 경우도 많아 청각 기능 개선에 관한 접근이 필요하다.

경계성 기형 치료는 미용 성형에 해당한다고 인식돼 주위의 곱지 않은 시선과 오해를 받는다. 환자 또한 본인이 지닌 고통의 내용을 제대로 파악할 적절한 정보를 얻을 수 없고 이를 총체적으로 해결할 의료 기관이 어디인지 알 길이 없어 그저 거리에 나서면 만나게 되는 무분별한 성형 광고와 과잉 치료의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경계성 기형 환자의 치료가 보험 적용을 받기 위해서는 현재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에서 적용하는 기준을 만족해야 하는데 대부분 매우 심한 경우가 아니면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보험 적용이 안 되는 수술비도 부담이 큰 마당에 낮은 자존감의 해결이나 발음, 청력 개선을 위하여 추가로 치료비를 지불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복지 국가로 갈수록 국민의 총체적이고 전인격적인 치료가 중요하다. 국가는 국민의 행복을 위하여 적절한 재정 지원을 하고 의료 기관은 그에 맞는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여야 할 것이다.

김영호 성균관대 의대 삼성서울병원 교수 미국 역학·예방의학 학술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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