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신석호]북한 한성렬 미국국장의 잠 못 이루는 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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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호 워싱턴 특파원
신석호 워싱턴 특파원
북한 외무성만큼 미국 정세를 치밀하게 연구하는 조직은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는 말이 있다. 김정일은 1990년대 초반 소련이 붕괴한 이후 2대 세습 독재자로 정권을 물려받았다. 그는 세계 유일 초강대국이 된 미국의 정세를 미리 잘 읽고 선수(先手)를 쳐야 쌀도 기름도 나온다고 생각해 미국 연구에 골몰했다.

1993년 1차 핵위기 이후 북한은 미국의 국내 정세를 교묘하게 이용해 도발과 대화를 병행하는 전술을 적절히 구사하며 핵 개발을 지속하면서도 적지 않은 경제적 이익도 챙겼다. 강석주 김계관 이용호 등으로 대표되는 외무성 미국통들이 밤낮으로 미국을 연구해 김정일에게 ‘제의서’를 올려바친 결과다.

올해 말에도 미국 담당 부서인 외무성 미국국(美國局)은 새해 첫날 김정은 3대 세습 독재자의 신년사에 담길 대미 메시지를 작성하느라 바쁜 연말을 보냈을 것이다. 특히 2002년 이후 유엔주재 북한 대표부 차석대사를 두 차례나 지내 누구보다 미국 정치의 생리를 잘 아는 한성렬 미국국장은 여러 날 잠을 못 이뤘을 듯하다. 내년 미국 정치의 쟁점과 방향을 가늠하면서 과거처럼 북한이 활용할 만한 어떤 틈이 있는지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내년에 가장 중요한 미국의 정치일정은 11월 중간선거다. 100석 중 35석을 바꾸는 상원 선거에서는 민주당이, 435석 모두가 선거 대상인 하원에서는 공화당이 다수당 자리를 유지할지가 관건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이 다소 불리하다는 전망이 적지 않다. 상하원 모두 공화당이 장악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오바마 대통령은 다수당인 공화당이 반대하는 정책을 추진하기 어려운 내치보다는 외교정책에서 두 번째 임기의 마지막 성과를 내려 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혹시 2006년 조지 W 부시 대통령 2기 중간선거 당시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해 10월 북한은 1차 핵실험을 했고 한 달 뒤 중간선거에서 부시 대통령은 상하원을 모두 민주당에 잃었다. 선거 패배 여파로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부시 행정부 내 신보수주의자(네오콘)들이 모두 자리를 떠났고 북한은 6자회담 테이블에 다시 초대됐다. 북한은 다음 해 2·13합의와 10·3합의 등 거짓 대화를 통해 2차 핵실험 준비와 우라늄 농축시간을 벌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많이 다르다. 중간선거에서 져도 오바마 대통령이 2009년 취임 후 5년 동안 고집해 온 대북 기조,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를 바꿀 가능성은 크지 않다. 민주당은 세 번이나 핵실험을 한 북한에 빗장을 잘못 풀었다가는 2016년 대선도 진다고 생각하는 분위기다. 공화당도 상하원을 장악한 뒤 북한에 대한 제재 강화 법안을 만들어 낼 공산이 크다.

북한처럼 핵개발과 경제발전이라는 모순적인 가치를 좇던 이란이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에 더욱 속도를 내면 북한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핵을 놓고 미국과 대치하는 외톨이 신세가 될 수도 있다. 외무성 미국국 내부에서는 ‘우리도 이란처럼 광명의 길을 찾자’는 전향적인 생각을 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장성택 계열로 찍힌 외교관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누가 감히 독재자의 노선에 반기를 들 수 있을까. 친중파 장성택은 죽고 대미 대화파들은 입을 닫은 상황에서 북한이 핵을 안고 무너지는, 그들에게는 최악의 길로 한발 더 나아가는 새해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안타깝다.

신석호 워싱턴 특파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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