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새엄마… 눈밭훈련 석달 함께 하니 ‘엄마’래요”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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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소치 THANK YOU, MOM]<3>스노보드 김호준 키운 이경숙씨

김호준의 어머니 이경숙 씨가 29일 서울 종로에 위치한 자신의 귀금속 가게에서 김호준이 대회에서 딴 트로피와 메달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가게 이름은 큰딸 ‘예나’와 아들 ‘호준’의 이름을 딴 ‘예준’이다. 이 씨는 “호준이의 사진을 보면서 힘든 생활 속에서도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김호준의 어머니 이경숙 씨가 29일 서울 종로에 위치한 자신의 귀금속 가게에서 김호준이 대회에서 딴 트로피와 메달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가게 이름은 큰딸 ‘예나’와 아들 ‘호준’의 이름을 딴 ‘예준’이다. 이 씨는 “호준이의 사진을 보면서 힘든 생활 속에서도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14년이나 지난 만남이었다.

2004년 1월 강원 평창군 용평의 한 주택에서 처음 만났다. 이경숙 씨(41)는 민머리에 새까맣게 얼굴이 그을린 당시 14세의 김호준(23·CJ제일제당·사진)과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 대했다. 아버지 김영진 씨(53)는 김호준에게 이 씨를 ‘새엄마’라고 소개했다.

당시 김호준은 훈련과 경기 출전을 위해 집을 떠나 스키장과 가까운 용평에 집을 빌려 매년 1월부터 3개월간 운동에 전념했다. 이 씨는 ‘식모살이’를 자처했다. 밥을 챙겨주는 것은 기본이고 모든 훈련장과 경기장에 따라다녔다. 도시락과 간식을 챙겨주기 위해 하루에 3∼4번씩 집과 훈련장을 오가기도 했다. 훈련이 끝날 때까지 이 씨는 영하 10도의 강추위 속에서도 아들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한 달 정도 지나자 이 씨는 멀리서 봐도 어느 선수가 김호준인지 알게 됐다. 훈련이 끝나면 김호준의 빨갛게 언 손을 자신의 손으로 가져가 녹이곤 했다. 3개월간의 전지훈련이 끝난 뒤 김호준은 학교 기숙사로 돌아가기 전 이 씨에게 쑥스러운 듯 말했다. “엄마. 학교 잘 다녀올게요.” 처음으로 꺼낸 ‘엄마’라는 말이었다.

○ 7년간을 따라다니며 정을 쌓다

김호준은 내년 소치 겨울올림픽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출전이 거의 확정적이다. 올림픽에는 월드컵 랭킹 상위 40위까지 출전한다. 김호준은 29일 현재 22위다. 출전 포인트가 걸린 남은 국제대회에서 다른 선수에게 추월당할 확률은 적어 보인다. 부상 등 큰 이변이 없는 한 올림픽 무대를 밟는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 이은 2연속 출전이다. 한국 스노보드 선수로 첫 올림픽에 출전한 김호준은 소치에서는 한국 선수로 설상 종목 첫 결선 진출을 노리고 있다.

김호준이 한국 스노보드 역사를 새로 쓸 수 있었던 데에는 어머니 이 씨의 희생이 컸다. 이 씨는 비록 직접 낳은 아들은 아니지만 헌신적으로 김호준을 뒷바라지했다. 당시 회사를 다니던 이 씨는 양해를 구하고 1년 중 3개월은 휴직했다. 김호준의 3개월간의 전지훈련을 직접 챙겨주기 위해서였다. 대회가 없는 비시즌에도 이 씨는 매주 김호준의 학교가 있는 강원도 춘천으로 갔다. 기숙사 생활로 주말에만 외박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밴쿠버 올림픽에 출전하기 전까지 7년간 주말마다 호준이를 찾아갔어요. 낳은 정은 없을지 몰라도 기른 정이라도 붙이고 싶었죠. 모텔과 찜질방을 전전하는 힘든 생활이었지만 엄마 역할을 다하고 싶었어요.”

이 씨의 이야기를 옆에서 듣던 남편 김 씨는 “호준이가 올림픽에 출전하고 성공한 선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내의 희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호준이도 항상 ‘엄마가 세상에서 최고’라고 말한다”고 웃었다.

○ 조금 더 일찍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이 씨는 평소에 전지훈련과 국제대회 출전으로 1년 중 3분의 2 이상을 떨어져 지내는 김호준과 하루에도 수십 번씩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김호준은 긴 타지 생활에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길 때 아버지보다 이 씨를 먼저 찾는다.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다가도 ‘엄마’라는 메시지가 오면 덜컥 겁이 나요. 엄마라고 부르면 호준이에게 힘든 일이 생긴 것이거든요. 지난달에도 ‘엄마’라고 찾아 바로 전화했더니 부상으로 입원했더라고요. 그래도 힘들 때면 엄마를 찾아줘서 고맙죠.”

정을 쌓으면 쌓을수록 이 씨의 아쉬움은 더 커진다. “저는 14년이나 늦게 호준이를 만났어요. 비록 직접 낳은 아들은 아니지만 호준이가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더 빨리 만났으면 더 정을 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커져 가요.”

올해 7월 귀금속 가게를 연 이 씨는 김호준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 김호준은 선수생활을 하면서 받은 상금 등을 모은 5000만 원을 이 씨의 개업자금으로 지원했다.

“미안하죠. 그래도 엄마가 있으니 자기가 이렇게 클 수 있었다고 말해줘서 고마워요. 늦었지만 다행이에요. 호준이와 함께 보낸 날보다 앞으로 함께 보낼 날들이 더 많아서요.”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소치올림픽#스노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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