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 배구 포청천 외길 ‘아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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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2월 30일 07시 00분


30년 가까이 배구 코트를 지켜온 김건태 심판(오른쪽)이 29일 V리그 남자부 우리카드-한국전력 경기를 끝으로 휘슬을 내려놓았다. 은퇴 행사에서 KOVO 구자준 총재로부터 공로패를 전달받는 모습. 아산|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 @seven7sola
30년 가까이 배구 코트를 지켜온 김건태 심판(오른쪽)이 29일 V리그 남자부 우리카드-한국전력 경기를 끝으로 휘슬을 내려놓았다. 은퇴 행사에서 KOVO 구자준 총재로부터 공로패를 전달받는 모습. 아산|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 @seven7sola
■ 한국배구연맹 김건태 전임 심판 공식 은퇴

세계 980여명 국제심판 중 열손가락 최고의 자리에
1년 중 절반은 외지서…가족도 소원 외로운 여정
423경기 끝으로 코트와 이별…후배 양성 새로운 길


숨 가쁘게 달려온 시간이었다. 강산이 두 번이 바뀌었지만 처음 배구 판관이 됐던 그 순간의 마음과 열정만큼은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다.

한국배구연맹(KOVO) 김건태(58) 전임 심판이 29일 프로배구 V리그 남자부 우리카드와 한국전력의 경기를 끝으로 27년간의 ‘배구 포청천’ 외길 인생에 마침표를 찍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시작한 심판 인생이었다. 190cm 신장으로 배구 국가대표 센터로도 활약한 김 심판은 혈관 문제로 일찌감치 현역 선수 생활을 마쳐야 했다. 평범한 회사원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듯 했지만 주위 권유로 1987년 국내 배구 심판 라이선스를 땄고, 3년 뒤인 1990년에는 국제 심판이 됐다.

“기왕 시작한 것, 최고가 되고 싶었다. 정상의 국내 심판, 정상의 아시아 심판, 정상의 세계 심판이 되겠다는 꿈으로 한 눈 팔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

지극히 어려운 길이었다. 3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친구 한 명 만들지 못했다. 오히려 지인들이 하나둘씩 떨어져 나갔다. 누군가와 만나는 것 자체가 꺼려졌다. 괜한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았다. 편히 소주 한 잔을 함께 할 사람 한 명 남지 않았다.

“국내든, 해외든 1년 중 6개월은 외지를 돌아다녔다. 자식들은 아빠 없이 성장한 것과 진배없다. 마음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 하나도 없다. ‘좋은’ ‘제대로 된’ 심판이라면 당연히 그리 해야지만 말처럼 쉽진 않다.”

그래도 밖에서는 최고로 통했다. 김 심판은 1998년부터 2010년까지 국제배구연맹(FIVB) 심판으로 휘슬을 불었다. 전 세계에 약 980명의 국제 심판들이 있는데, 그 중 ‘FIVB’ 타이틀을 달고 올림픽과 월드컵, 세계선수권 주심을 볼 수 있는 인원은 열 명 안팎이다. 그야말로 ‘최고 중의 최고’를 의미하는 셈. 여기서도 김 심판은 2011년 FIVB 올해의 심판상을 받았고, 2011년부터는 아시아배구연맹(AVC) 심판위원으로 활동했다.

12년 세월을 FIVB 심판으로 활약하는 동안 숱한 에피소드도 있었다. 국제 경기 350여 회, 12차례 국제 대회 결승전 휘슬을 잡은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2007년 10월 브라질과 폴란드의 여자배구월드컵 개막전이었다. 스트레스로 인한 탈수 증세로 2세트 초반 실신한 김 심판은 심판대에서 떨어질 뻔 했다. 다행히 바닥을 구르진 않았지만 심판 세계의 정신적인 고충을 입증한 장면이었다.

국내에서도 왕성히 활동했다. 2004년 KOVO 출범과 함께 심판위원장이 돼 후배 심판 교육과 배정, 규정 마련에 적극 임했다. 트리플크라운과 비디오판독, 재심요청, 심판 알코올 테스트 등이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프로배구 출범 9시즌 동안 423경기를 책임진 김 심판이지만 아직 할 일이 남았다. 2015년까지 AVC 심판위원으로 활동하는 동안 후배 양성을 해야한다.

“좋은 심판이 되려면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닌 먼 곳을 바라봐야 한다. 자기 관리도 철저해야 하고, 끊임없는 공부도 필요하다. 배구계도 외교력 강화에 투자해야 한다. 임원들과 위원들을 계속 배출해 영향력을 확대해야 한다.”

코트를 떠난 베테랑 심판의 눈길은 여전히 코트를 향해 있었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트위터 @yoshik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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