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입시, 목숨 걸고 공부해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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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자본을 향한 전 지구적 혼란… 입시가족 24가구 인터뷰로 해답 모색
◇입시가족―중산층 가족의 입시 사용법/김현주 지음/236쪽·1만4000원/새물결

책을 머리에 이고 한숨을 내쉬는 아이의 표정이 참으로 안타깝다. ‘입시가족’의 저자는 원래 공부란 “성공적으로 자기를 표현하는 것”이라 말한다. 하나 실상이 그런가. 한숨은 둘째 치고 시험 점수 1, 2점 때문에 목숨마저 끊는 참혹한 현실. 부모와 자녀가 더욱 소통하고 인내를 발휘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새물결 제공 ⓒPHOTOapple
책을 머리에 이고 한숨을 내쉬는 아이의 표정이 참으로 안타깝다. ‘입시가족’의 저자는 원래 공부란 “성공적으로 자기를 표현하는 것”이라 말한다. 하나 실상이 그런가. 한숨은 둘째 치고 시험 점수 1, 2점 때문에 목숨마저 끊는 참혹한 현실. 부모와 자녀가 더욱 소통하고 인내를 발휘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새물결 제공 ⓒPHOTOapple
대학입시. 이쯤 되면 포기해야 되는 거 아닌가도 싶다. 수십 년째 폐해를 부르짖었지만 그다지 바뀐 게 없다. 아니, 오히려 더 심해지고 있다. 아이들은 경주마처럼 초등학교 때부터 준비해도 늦단 소리가 나온다. 서울과 지방의 격차는 눈에 띄게 벌어졌다. 입시생을 둔 가족의 고통이 거론되면 이젠 무뎌지다 못해 그러려니 모른 척하게 된다.

허나 눈 감는다고 세상이 바뀌랴. ‘경쟁에서 밀리면 끝이다’라는 강박관념이 무슨 사회적 정의인 것처럼 판을 친다. 심지어 이런 교육을 벗어나자는 취지인 대안학교마저 입시 준비에 소홀하면 학부모의 지탄을 받는단다. 웬만했으면 대형 사교육업체 회장이 “목숨 걸고 공부해도 소용없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현실”이라고 개탄했을까.

하지만 저자는 그럴수록 더 속살을 파헤쳐야 한다고 외친다. ‘망국병’이니 ‘신도 못 고친다’는 소리만 할 게 아니라 실제 입시가족의 삶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 농업농촌사회 분야 민간연구소인 ‘지역아카데미’에서 이사로 활동하는 저자는 프랑스 파리5대학에서 가족사회학을 전공한 학자. 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자녀가 있는 ‘중산층’ 스물네 가족에 현미경을 들이댄 심층 인터뷰를 벌였다.

이 책에서 설정한 중산층이란 개념은 의미심장하다. 절반가량이 ‘노원구의 대치동’이라 불리는 서울 중계동과 하계동에 사는 가족들. 나머지는 강남과 서울 근교가 뒤섞여 있다. 저자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 크게 돈 때문에 포기해야 할 일이 없을 정도”의 경제적 능력과 교육적 열정을 가진 가족에 초점을 맞췄다. 이는 중산층을 정의하는 개념을 너무 단순화(어쩌면 상향화)했다는 논쟁거리를 던져주지만, 그 때문에 입시생 가족의 얽매임 없는 계층적 욕망을 내밀하게 살필 수 있다는 장점을 지녔다.

뭣보다 이 책은 우리가 흔히 ‘입시가족’이란 명제에서 기계적으로 떠오르는 뻔한 구도를 지양한다. 크게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자식으로 구성된 가족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피해갈 수 없는 교육제도를 맞닥뜨려서 어떻게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살폈다.

예를 들어, 지방 농촌사회 혹은 서울이라 해도 20세기 가치관 속에서 자랐으나 21세기를 살고 있는 부모는 불가피하게 이중성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자식 교육에 모든 걸 거는 옛 가족 구조를 꺼리면서도 현실에서 경쟁에 뒤처지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체험했기 때문이다. 자본의 재생산 구조가 경제는 물론이고 학력까지 장악한 시대에 반발과 수긍을 동시에 품은 셈이다. 이런 인식은 당연히 자녀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목적의식을 갖고 나아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안전망으로 보이는 테두리에서 도태되지 않는 것을 욕망하는, 모순적 인식을 배우게 된다.

“부모들이 자녀의 대학 진학 문제에 노심초사하는 마음은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욕망과 현실 사이의 괴리에서 나온다. 욕망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낀다면 소망이라는 말로 순화해볼 수 있겠지만 모든 부모들이 인생에 있어 끝내 ‘실현돼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소망이기에 결국 이것은 욕망이다. 명문대 출신의 최고 학력자의 삶의 궤도 위에서 벌어진다고 생각하는 향연을 보통 사람들이 자신의 도덕으로 내면화한 욕망인 것이다.”

물론 이 욕망은 당사자들만의 책임이 아니다. 추정컨대 이 땅에 너무나 급박하게 뿌리 내린 자본주의가 잉태한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최근 훨씬 더 기형적 구조의 자본주의가 만개한 중국 사회를 보면 입시교육의 폐해가 이루 말로 못 한다. 게다가 책에서도 언급했듯 안정적으로 보였던 서구사회조차 최근 만성적 경기불황과 세계화의 물결 속에 입시 경쟁이 점차 과열되고 있다. 이제 ‘학력 자본’을 향한 전 지구적 혼란은 이미 제어할 수단을 잃어버린 듯한 양상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실낱같은 희망을 찾자면, 이런 극단적 치달음이 무쇠처럼 견고했던 벽을 깨뜨리는 창이 되어줄지도 모르겠다. 근사한 학력을 쌓아도 사는 데 별 소용이 없으니까. 이미 주위에서 명문대를 나와도 백수의 절망에 빠져 사는 젊은이는 쉽사리 발견된다. 이런 갈등이 켜켜이 쌓인다면 새로운 성찰의 시대가 생각보다 이르게 찾아올 수도 있다.

다만 그동안 그 고통을 감내해야 할 입시생과 가족은 어쩌면 좋단 말인가.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부제인 ‘중산층 가족의 입시 사용법’은 결단코 틀린 얘기다. 지금 시대는 ‘입시의 중산층 가족 사용법’이 더 맞는 소리다. 어쩌면 저자는 언젠가 그들에게 다시 사용 권한이 돌아가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담았던 걸까.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대학입시#중산층#입시가족―중산층 가족의 입시 사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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