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대영제국 최후의 모험, 수단전쟁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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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툼/마이클 애셔 지음·최필영 옮김/636쪽·3만 원/일조각

1898년 수단 옴두르만에 포진한 마흐디군을 향해 돌격하는 영국 제21기병연대의 전투 장면을 묘사한 당시 영국의 신문 삽화. 훗날 영국 총리가 되는 윈스턴 처칠이 소위로 참여한 이 돌격은 영국 역사상 연대 단위의 마지막 기병 돌격이 됐다. 일조각 제공
1898년 수단 옴두르만에 포진한 마흐디군을 향해 돌격하는 영국 제21기병연대의 전투 장면을 묘사한 당시 영국의 신문 삽화. 훗날 영국 총리가 되는 윈스턴 처칠이 소위로 참여한 이 돌격은 영국 역사상 연대 단위의 마지막 기병 돌격이 됐다. 일조각 제공
1955년 영국에서 독립한 수단은 아프리카 최대 영토 국가였다. 하지만 2011년 7월 북수단(수단공화국)과 남수단(남수단공화국)으로 나뉘면서 알제리에 그 자리를 내줬다. 북수단이 아랍계 함족(백인종)의 나라라면 남수단은 아프리카계 흑인종의 나라다. 최근엔 남수단에서 최대 종족인 딩카족(15%)과 누에르족(10%)이 다시 내전상태에 돌입했다.

영국 작가이자 탐험가인 마이클 애셔가 2005년 발표한 이 책은 19세기 말 황혼기를 맞은 대영제국의 최후의 모험이 펼쳐진 공간으로서 수단을 극적으로 그려낸다. 그것은 제국주의 시절 아프리카 원주민이 세운 최초의 독립국으로 수단에 세워진 마흐디국(1881∼1899년)과 대영제국의 치열한 전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책을 읽노라면 수단이란 낯선 나라가 어떻게 형성됐고, 왜 종족 갈등의 온상이 됐는지도 파악할 수 있다.

수단은 16세기 이후 오스만튀르크의 식민지였던 이집트가 19세기 초 개척한 또 다른 식민지였다. ‘식민지의 식민지’라는 이런 이중의 굴레가 기형적 국가 발전을 낳은 것이다.

이집트는 수에즈 운하 건설에 들어간 부채를 감당 못해 1876년 이후 사실상 영국의 반식민지로 전락한다. 이를 틈타 이슬람 원리주의자인 무함마드 아흐마드(1844∼1885)가 이슬람 구세주를 뜻하는 ‘마흐디’를 자처하며 수단에 독립 국가를 세운다. 이들은 1883년 창칼로 무장한 4만 명의 병력으로 대포와 기관총으로 무장하고 영국군 장교의 지휘를 받던 1만2000 명의 이집트·수단 혼성군을 궤멸시킨다.

영국은 잃어버린 자존심을 회복하고자 찰스 고든 중장(1833∼1885)을 수단총독으로 급파한다. 고든은 ‘중국의 마흐디’라 할 홍수전이 이끈 태평천국의 난(1851∼1864년)을 진압한 전쟁영웅이자 1870년대 오늘날 남수단과 우간다 북부를 묶은 에콰토리아 주지사와 수단총독을 역임한 거물이었다. 하지만 ‘고든구원군’으로 불린 4000명의 영국군이 도착하기 직전 카르툼(국립국어원 표기로는 하르툼)은 함락되고 고든의 목도 잘린다.

절치부심한 대영제국의 설욕에는 14년이 걸렸다. 그 사이 마흐디가 죽고 압달라히 와드 토르샤인(1849∼1899)이 후계자가 된다. 책의 후반부는 그 설욕전의 주역이자 제1차 세계대전 때 ‘조국은 당신을 원한다!’는 모병 포스터의 모델이 된 허버트 키치너(1850∼1916)의 활약에 집중된다. 키치너는 1만4000명의 영국·이집트 연합군을 이끌고 압달라히가 이끈 6만 명의 마흐디군을 궤멸한다.

책은 수단 북부에 있었던 고대 흑인왕국 누비아의 오랜 역사나 인종적 종교적 역사적 배경이 다른 북수단과 남수단을 억지로 합쳐놓은 영국의 책임을 소홀히 다뤘다. 하지만 오사마 빈라덴의 원리주의가 마흐디국에 뿌리를 뒀으며 이집트 주재 영국총영사로 25년간 이집트를 지배했던 에벌린 배링(1841∼1917)이 1995년 파산한 배링은행 창업자의 손자이며 윈스턴 처칠(1874∼1965)이 키치너 휘하 군대의 육군소위로 카르툼 함락전에 참전했다는 흥미로운 내용이 가득하다. 연도표기 오류로 독자의 혼란을 초래한 점은 옥에 티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카르툼#대영제국#마흐디국#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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