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는 오만한 국수주의의 발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7일 03시 00분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어제 야스쿠니신사를 전격 참배했다. 일본의 현직 총리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것은 2006년 8월 15일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 이후 7년 4개월여 만의 일이다. 아베 정권의 출범 1년을 맞아 이뤄진 그의 참배는 일본 제국주의에 피해를 당한 한국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심각한 도발 행위다.

야스쿠니는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켰을 때 총리였던 도조 히데키를 비롯해 A급 전쟁범죄자 14명이 합사된 곳이다. 일본의 해외 침략과 가해(加害)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야스쿠니는 다른 나라의 전몰자 추도시설과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 이런 곳을 일본 정부 수반인 총리가 참배한다는 것은 일본 군국주의가 저지른 식민 지배와 침략의 역사를 부인하고 피해국 국민의 상처를 덧내는 일이다.

아베 총리는 참배 직후 “두 번 다시 전쟁에 참가해 국민이 고통받는 일이 없는 시대를 만든다는 결의로 참배했다. 한국과 중국 국민의 기분을 상하게 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앞뒤가 맞지 않는 궤변이다. 그는 이웃 나라들의 반발이 뻔한데도 참배를 강행해 국수주의적인 역사인식을 드러냈다.

한국 정부의 대변인인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성명에서 “아베 총리가 용서받을 수 없는 전범들을 합사한 반(反)역사적 시설물인 야스쿠니를 참배한 것은 한일 관계는 물론이고 동북아시아의 안정과 협력을 근본부터 훼손시키는 시대착오적인 행위”라고 비판했다. 중국도 외교부 대변인 담화를 통해 “야스쿠니 참배는 침략과 식민 통치의 역사를 미화하고 국제사회가 내린 정의의 심판을 뒤집으려는 시도”라고 비난했다. 그렇지 않아도 냉랭했던 일본과 한중(韓中)의 관계가 싸늘하게 얼어붙어 당분간 회복하기 힘들게 됐다.

주일 미국대사관은 이례적으로 “일본은 (미국의) 동맹국이자 친구지만 일본 지도자가 주변 국가와의 긴장을 격화시키는 행동을 취한 것에 실망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내놓았다. 이번 참배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국이 상당 기간 주도해온 전후(戰後) 국제 질서를 부인하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이런 도발은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고립을 심화시켜 결국 일본의 국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베 총리는 그동안 한일과 중-일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정상회담을 희망한다는 뜻을 여러 번 밝혔다. 그러나 이번 야스쿠니 참배로 그가 언급해온 우호나 관계 개선 같은 말들이 공허한 수사(修辭)에 불과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일본이 역사인식에서 노골적인 역(逆)주행을 하는 이상 한국도 국제사회와 협력하며 강력히 대응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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