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전 다 드러날라, TV 카메라 신경쓰여”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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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농구 작전타임 밀착 중계… 스마트폰으로 상대방도 시청
긴박한 벤치 상황 여과 없이 전달… 감독들 “작전판 촬영 자제” 건의도

작전 타임 때 진지한 표정으로 선수들에게 작전 지시를 하고 있는 SK 문경은 감독(가운데). KBL 제공
작전 타임 때 진지한 표정으로 선수들에게 작전 지시를 하고 있는 SK 문경은 감독(가운데). KBL 제공
남녀 프로농구에서 초보 감독들이 남몰래 진땀을 흘리는 순간이 있다. 작전타임 때다. 최근 들어 TV 중계 카메라가 긴박한 벤치의 상황을 여과 없이 전달하고 있다. 그만큼 감독의 역량과 감정 상태 등이 그대로 드러난다. 한 감독은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아 소중한 타임아웃을 부른 뒤 “움직임이 별로 없지 않느냐”고 ‘하나 마나’ 한 질책으로 일관해 시청자들의 실소를 자아냈다. 경험이 부족한 감독은 개선 방법을 제시하기보다는 “집중해라”, “정신 차려라” 등의 모호하거나 애매한 주문을 많이 한다.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멘붕’에 빠진 감독 대신 코치가 나서기도 한다. 반면 노련하고 지략에 밝은 감독일수록 메시지는 간결하며 요점을 꼭 짚는다. 경기 막판 1, 2점 차의 접전 중이라면 결정적인 공격 패턴으로 선수들의 동선까지 세밀하게 주문하는 식이다. 평소 맞춤형 반복 훈련이 중요한 이유다.

지략이 뛰어나 ‘만수’로 불리는 유재학 모비스 감독은 “작전을 부르면 오히려 말을 적게 한다. 복잡하고 장황한 전술일수록 선수들이 헷갈려한다”고 말했다. 문경은 SK 감독은 “3년 전 감독 대행이 됐을 때 작전타임에 무척 신경이 쓰였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했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또 “다른 팀의 경기 중계를 볼 때 선배 감독들이 어떤 식으로 지시하는지 유심히 봤다. 내 첫 번째 원칙은 지나간 잘못은 절대 지적하지 않는 것이다. 천금 같은 시간에 앞으로 해야 할 걸 말하기도 바쁘다”고 덧붙였다.

작전타임 때 드러나는 모습은 그 팀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대변한다. 잘되는 집안은 주전과 후보를 떠나 일제히 감독의 입에 눈과 귀를 집중시킨다. 팀워크가 허술한 팀은 감독이 아무리 열변을 토해도 손톱을 뜯거나 선수끼리 사담을 나누는 등 딴전을 피우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중계 카메라가 공격과 수비의 패턴을 그려가며 설명하는 작전 지시판까지 클로즈업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대부분 감독은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김진 LG 감독은 “긍정적이지 않아 보인다. 아마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일일 것이다. 감독들이 한국농구연맹에 작전타임 때 카메라 촬영을 자제시켜 달라는 건의를 한 적도 있다”고 지적했다. 프로야구에 사인 훔치기가 있듯 모바일 중계가 보편화되면서 원 샷 플레이 같은 결정적인 작전이 상대 팀에 노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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