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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심판 “아웃 사인 29년, 이제 내게 아웃 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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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심판 “아웃 사인 29년, 이제 내게 아웃 사인”

동아일보입력 2013-12-27 03:00수정 2013-12-27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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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임하는 ‘배구 포청천’ 김건태 심판
“앞으론 2년간 아시아 국제심판 양성해요”
세계 최고의 심판으로 명성을 날렸던 김건태 심판이 공이 아웃됐다는 것을 알려주는 수신호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경기 때 가장 많이 한 동작인데 이제는 내가 코트에서 아웃되는 셈”이라며 웃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전생에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이 심판이 된다고 하더라. 힘들고 외로운 직업이지만 자부심을 갖고 30년 가까이 이 길을 걸었다. 1년에 6개월을 집에 못 들어갔고 호강도 못시켜줬는데 묵묵히 내조한 아내와 가족들이 고마울 뿐이다.”

열성 팬이라도 심판의 이름까지 알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김건태 심판(58)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국가대표 센터(190cm)로 활약하다 희귀병으로 수술을 받은 뒤 선수를 은퇴한 그는 일반 회사를 다니다 1985년 심판의 길로 접어들었다. 1990년 국제심판 자격증을 땄고 1998년부터 2010년까지 국내 유일의 국제배구연맹(FIVB) 심판으로 활약했다. FIVB 심판은 전 세계 약 1000명의 국제심판 가운데 10여 명에게만 주어지는 ‘심판 중의 심판’이다.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 주심은 그들만 할 수 있다. 그는 2011년 ‘FIVB 심판상’을 받았다. ‘세계 최고의 심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7년 10월 일본에서 열린 여자배구 월드컵 개막전 주심을 봤다. 1세트가 끝난 뒤 앉아 있는데 눈앞이 깜깜해졌다. 손가락을 물어뜯어 피를 흘리니 괜찮아진 듯했지만 결국 2세트 초반 정신을 잃고 심판대에서 떨어졌다. 스트레스로 인한 탈수 증세였다. 세계 각국에 중계되는 경기였는데….”


평소 운동을 열심히 하며 체력을 단련해 온 그였지만 몸이 과중한 업무를 견디지 못했다. 그는 2004년 한국배구연맹(KOVO) 출범과 동시에 심판위원장이 됐다. 심판 교육과 배정, 평가는 물론이고 로컬룰을 만드는 작업도 그의 몫이었다. 트리플 크라운, 비디오 판독, 심판 알코올 테스트, 재심 요청제도 등은 모두 그의 작품이다. 2005∼2006시즌부터는 직접 심판도 맡았다. 쓰러져 실려 간 일본 병원에서 “이러면 죽는다”는 의사의 경고를 듣고 그는 귀국하자마자 모든 보직을 내려놓고 심판만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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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2003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유고와 브라질의 월드리그 결승전이다. 체육관에 운집한 관객만 1만3000명이었고, 세계 47개국에 생중계됐다. 브라질이 최종 5세트에서 듀스 접전 끝에 31-29로 이겼다. 브라질이 21세기 배구 최강으로 거듭난 순간이었다. 국내 경기로는 1995∼1996시즌 슈퍼리그 챔피언결정전 4차전이 아직도 생생하다. 장윤창 유중탁이 은퇴한 ‘다윗’ 고려증권이 임도헌 마낙길 강성형 등 초호화 멤버의 ‘골리앗’ 현대자동차를 4시간이 넘는 풀세트 접전 끝에 이기고 우승했다. 주심인 내가 손에 땀을 쥘 정도였다.”

컵 대회를 포함해 프로배구에서 9시즌 동안 422경기의 판관을 맡았던 그는 이제 마지막 423번째 경기를 준비하고 있다. 29일 아산 이순신체육관에서 열리는 우리카드-한국전력 경기다. 경기 시작 전에는 KOVO가 마련한 은퇴식도 열릴 예정이다. 심판복은 벗지만 아시아배구연맹 심판위원으로 2015년까지 국제심판 양성 활동은 계속한다.

“뒤돌아보니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오심을 줄이려고 죽기 살기로 노력했지만 ‘오류 제로(0)’는 안 되더라. 박봉에다 퇴직금, 연금도 없는 직업이지만 후배 심판들이 더 노력해 배구 발전에 기여했으면 좋겠다.”

은퇴를 눈앞에 둔 노장 심판의 관심은 여전히 배구였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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