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경로당에서… 생활 속 불편 바로잡습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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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영역 불편개선 선도하는 서비스디자이너들의 세계

19일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에서 만난 윤성원 한국디자인진흥원 팀장, 서비스디자이너 노미경, 이정규, 팽한솔, 김성환 씨(왼쪽부터). 이들은 “물건을 디자인할 때는 그저 잘했다는 소리만 듣지만 서비스 디자인으로 삶 속의 불편함을 고치면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받는다. 그럴 때 보람이 가장 크다”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19일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에서 만난 윤성원 한국디자인진흥원 팀장, 서비스디자이너 노미경, 이정규, 팽한솔, 김성환 씨(왼쪽부터). 이들은 “물건을 디자인할 때는 그저 잘했다는 소리만 듣지만 서비스 디자인으로 삶 속의 불편함을 고치면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받는다. 그럴 때 보람이 가장 크다”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 사이픽스 서비스디자인팀장 팽한솔 씨(26)는 디자이너다. 하지만 올 초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간호사 복장을 하고 일주일 동안 지냈다. 동료들과 3교대로 응급실을 지키며 개선점을 찾기 위해서다. 응급실은 촌각을 다투는 위급 환자와 경증 환자가 뒤섞여 혼란스러웠다.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은 환자 및 보호자와 그런 상황이 일상이 돼 버린 의료진 사이에 생긴 불신의 벽은 높았다. 보호자는 “가족이 죽어 가는데도 의료진이 제대로 돌보지 않는다. 간단한 질문을 해도 사고뭉치 취급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의료진도 “식사도 못 하고 밤낮으로 환자를 돌보는데 정신없는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

팽 씨는 일주일 동안의 관찰 결과와 2개월간의 의료진 면담을 바탕으로 응급실을 새롭게 디자인했다. 환자 응급 정도에 따라 7개 구역으로 나누고 도보 환자용과 앰뷸런스용 입구를 따로 만들어 응급실 내 동선이 최대한 겹치지 않도록 새로 짰다. 의료진과 환자 사이의 불신의 벽은 대형 전광판을 만들어 해결했다. 환자는 전광판을 보고 자신의 담당의와 간호사, 검사 진행 정도를 알 수 있게 됐다. 팽 씨는 “처음에는 ‘응급실에 웬 디자이너가 왔느냐’며 신뢰하지 않던 병원 관계자들도 개선 이후 혼잡과 혼란이 줄어들자 ‘전쟁터가 아니라 환자를 살리는 공간으로 출근하게 됐다’며 고마워했다”고 전했다.

팽 씨처럼 일상이나 공공 서비스 영역에서 원인도 모른 채 겪는 불편함을 바로잡아 주는 일을 서비스 디자인이라고 부른다. 2010년경부터 국내에 도입된 서비스 디자인이 다양한 분야에 접목되고 있다. 예쁘고 보기 좋은 물건 디자인에서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디자인으로 옮겨 가고 있는 것이다.

디자인 경력 20년 차 노미경 위아카이 대표(43)는 노인들을 위한 약 처방 서비스를 개선하고 있다. 강북삼성병원이 고객의 목소리를 병원 서비스에 반영하려고 만든 해피 청진기 위원회에 ‘꽃보다 할배’ 나영석 PD가 낸 의견이 계기가 됐다. 유럽으로 떠난 할배 출연진이 검은 봉지에 약을 담아 와선 어떤 약을 먹어야 할지 몰라서 애를 먹는다는 내용이었다.

노 씨는 책상에 앉아 디자인을 고민하기보다 노인 100여 명을 만나 인터뷰하고 불편한 점을 들었다. 노 씨는 “서비스 디자인은 사용자의 목소리를 듣고 공감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복용 시간을 알기 쉬운 픽토그램으로 알려 주고 물병도 꽂을 수 있는 약주머니를 고안했다”고 설명했다.

이정규 디자인와우 부사장(45)은 요양원과 경로당에서 노인을 위한 서비스 디자인에 힘쓰고 있다. 이 씨는 “디자이너는 관리자 시각이 아니라 사람 중심으로 바라보기에 작은 불편까지 해결할 수 있다. 결국 서비스 디자인의 핵심은 관찰과 공감인 셈”이라고 말했다.

23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OTM청담아트홀에서 열린 ‘서비스 디자인 나이트’에선 이 같은 공공 영역에서 불편을 개선하는 서비스 디자이너들이 모여 서로의 사례를 공유했다. 이를 공동 개최한 한국디자인진흥원은 올해 서비스 디자인 전담팀을 만들어 확산에 힘쓰고 있다. 윤성원 서비스디지털융합팀장(43)은 “서비스 디자인이 의료 분야에서 활발한 이유는 그만큼 서비스 제공자와 이용자의 권력 격차가 커 디자이너가 혁신해야 할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앞으로 사회 전반에서 서비스 디자인의 활약이 크게 늘어날 것이다”고 밝혔다.

세계 최초의 서비스 디자인 전문 회사인 영국 엔진의 유일한 동양인 디자이너 김성환 씨(33)는 유럽 사례를 들려줬다. 그는 “유럽 대기업을 중심으로 서비스 디자인이 단순히 물건을 판매하는 차원을 넘어 고객의 정서와 경험까지 만족시키는 최적의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은 아직 초기 단계지만 인간의 나약함과 감수성까지 서비스 디자인으로 위로하려는 시도는 유럽에서도 배울 만하다”고 말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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