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0원만 내면 되는 붕대세트… 병원에 40만원 지불했다고?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6일 03시 00분


코멘트

환자에게 돈 못받는 지혈대 엮어… 유통업체, 고가에 병원 납품
병원 10여 곳서 수백 명 ‘바가지’

수입 원가 400원가량인 중국산 붕대(왼쪽)와 세트로 묶여 환자에게 비용이 부당하게 청구된 지혈대 제품(오른쪽).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수입 원가 400원가량인 중국산 붕대(왼쪽)와 세트로 묶여 환자에게 비용이 부당하게 청구된 지혈대 제품(오른쪽).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일부 대형병원이 환자에게 비용을 청구하면 안 되는 제품이 포함된 의료기기 세트에 대해 수십만 원의 ‘거품’ 비용을 청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의 제품은 수도권의 주요 대학병원 2곳(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과 종합병원 1곳(서울 적십자병원)을 포함해 전국 각지의 병원에 ‘Sterile H.C. Set’라는 이름으로 납품된 것이다. 수술을 할 때 주로 사용하는 이 제품을 병원들은 비급여항목(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환자에게 비용을 청구하는 항목)에 포함해 사용했다. 환자들은 병원에 따라 적게는 20만 원부터 많게는 40만 원을 지불했다.

동아일보 취재팀 확인 결과 이 제품은 ‘헤마클리어(Hemaclear)’라는 지혈대와 중국산 탄력붕대가 묶인 세트였다. 하지만 이 가운데 환자가 돈을 지불해야 하는 부분은 수입 원가가 38센트(약 400원)인 붕대뿐이었다. 헤마클리어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서 ‘의사의 치료 행위에 포함되므로 환자가 따로 재료비를 낼 필요가 없다’고 판정받은 제품이다. 병원이 비용을 부담하고 환자에게 따로 돈을 받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병원들은 한결같이 “이런 사실을 잘 몰랐다”고 해명했다. 병원들은 유통업체가 붕대와 헤마클리어를 한데 묶어 원래 한 세트인 양 수십만 원에 병원에 납품했다고 주장했다.

심평원은 특정 의료 제품에 대해 환자에게 비용을 청구할 수 있는지를 판정한다. 심평원 재료등재부에 따르면 애초 ‘Sterile H.C. Set’라는 제품명으로 허가를 받은 제품은 붕대 하나뿐이었고 헤마클리어는 여기에 포함돼 있지 않았다. 판정 당시 유통업체가 심평원에 제출한 ‘Sterile H.C. Set’의 판매 예정가는 3000∼4000원대에 불과했다. 병원 측에서는 헤마클리어가 본제품이고 붕대는 여기에 끼여 오는 세트인 줄 알았다는 것이다. 한 병원 관계자는 “우리도 유통업체에 수십만 원을 주고 납품받았다”며 “붕대만 비용 청구가 가능한 줄 알았다면 그 돈을 주고 사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취재팀은 전국적으로 이 제품을 사용하고 환자에게 수십만 원을 청구한 병원이 최소 10곳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 이 중 납품 분량을 확인한 6곳에서 500여 개가 사용됐으며 나머지 4곳은 납품 규모를 공개하지 않았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붕대세트#중국산#고가 납품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