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상훈]가해자-피해자의 경계선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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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 오피니언팀 차장
김상훈 오피니언팀 차장
‘다스베이더’는 미국 할리우드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에 등장하는 악당이다. 커다란 철가면이 괴이한 느낌을 주면서도 살짝 우스꽝스럽다. 그런 이중성 때문일까. 다스베이더 캐릭터는 스타워즈 시리즈 첫 편이 나온 1977년 이후 35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인기가 높다. 미국의 한 조사에서는 지금까지 영화에 등장한 악역 캐릭터 중 3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원래 다스베이더는 선한 소년이었다. 어렸을 때는 노예 생활을 하면서도 꿋꿋하게 살았다. 하지만 불행은 그를 비켜가지 않았다. 어머니의 비참한 죽음을 목격해야 했다. 아내가 죽는 꿈을 꿨다. 그는 악의 힘을 빌려서라도 아내를 지키겠다고 결심했다. 결국 악마가 됐다.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변한 것이다.

영화 ‘엑스맨’에는 금속을 마음대로 다루는 악당 ‘매그니토’가 등장한다. 매그니토는 여러 능력을 지닌 돌연변이들을 규합해 인간세계와 맞선다.

그 또한 선한 소년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그 아이는 수용소에 갇혀 살았다. 나치의 미치광이 박사는 그를 대상으로 돌연변이 실험을 했다. 박사는 아이의 분노를 발산시키기 위해 아이의 어머니를 태연하게 살해했다. 그 아이는 어른이 된 후 복수에 나섰고, 마침내 미치광이 박사를 제거했다.

임무는 끝났다. 하지만 인간에 대한 불신은 더 커졌다. 끝내 과거의 비극을 극복하지 못하고 악의 화신으로 돌변했다. 그 또한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자리바꿈한 것이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돌변하는 순간, 파괴력은 삼류 악당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 그들은 상처를 이미 받아봤기에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는 방법을 아주 잘 알고 있다. 큰 상처에 여러 번 노출된 터라 단련도 돼 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오히려 즐긴다. 그러니 악당 중의 악당이 되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이런 악당의 등장이 흥미를 자아내는 효과를 낸다. 하지만 실제 현실에서 피해자와 가해자는 늘 뒤섞여 있다. 경계도 모호하다.

얼마 전 지방의 한 초등학교에서 여러 명의 학생이 한 명을 집단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 학생이 당한 상처는 매우 큰 듯했다. 학교도 빠지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라 했다. 피해 학생은 가해 학생들을 경찰청 학교폭력상담신고센터에 신고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들도 반발하는 듯하다. 그중 한 명은 자신이 오히려 폭행당했다며 피해 학생을 학교폭력상담신고센터에 ‘맞신고’했다고 한다. 경찰 수사를 지켜봐야겠지만 가해자와 피해자를 명확하게 구분해내는 게 쉽지 않은 일임을 알 수 있다. 어쩌면 이 학생들 모두가 추락한 공교육의 피해자일지도 모르겠다.

피해 학생에 대한 세심한 배려와 관찰이 필요하다. 아픈 상처를 보듬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상처는 치유되지 못한 채 오래도록 남을지도 모른다.

이제 5일만 지나면 2013년도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올 한 해도 수많은 사건이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그 가운데 일부는 여전히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정치인들은 모두 자신이 피해자이고, 상대방이 가해자라고 떠든다. 하지만 국민의 눈에는 그들 모두가 가해자다. 회사에서 성과를 내지 못했을 때 자신의 잘못은 돌아보지 않고 후배 직원만 탓하는 간부 또한 가해자일 뿐이다.

나 스스로를 돌아본다. 올 한 해 나는 가해자의 삶을 살았을까, 아니면 피해자의 삶을 살았을까. 혹시 경계선에 서 있었던 건 아닐까. 2014년이 오기 전까지 고민할 숙제가 생긴 것 같다.

김상훈 오피니언팀 차장 corekim@donga.com
#피해자#가해자#집단폭행#맞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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