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공간, 다른 시간]금오산 정상에 치킨집 있다는 말에 열심히 올랐던 딸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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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올라가면 치킨집이 있단다. 우리 먹으러 갈래?”

1998년 유독 무더웠던 어느 여름 날. 운동을 싫어하는 딸과 함께 등산을 가고 싶어 딸이 가장 좋아하는 치킨으로 유혹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어려서 아무것도 몰랐던 네 살배기 딸은 제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선뜻 손을 잡고 나섰답니다. 함께 오른 산은 경북 구미시 남통동 금오산. 금오산 폭포까지는 400m가량 걸어 올라가야 합니다.

성인이 등반하기엔 만만한 산이었지만 어린 딸에게는 에베레스트나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조금 걷다 과자 한 개 먹고, 조금 가다 쉬자고 조르느라 꽤 오랫동안 등산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15년이 지난 화창한 가을날. 열아홉이 된 다 큰 딸과 금오산을 다시 찾았습니다. 그때보다 몸도 마음도 한참 더 자란 딸은 저보다 훨씬 빨리 폭포까지 도착해 버리더군요.

여전히 많은 사람으로 붐비는 등산길, 세월과 자연의 흐름에 따라 예술품처럼 빚어진 돌들…. 세월이 지나도 변한 게 없는 배경 속에 우리 딸만 홀로 크게 변한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정상에 도착해 치킨집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며 엄마를 무섭게 째려보던 네 살배기는 이제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고 10대의 마지막에 접어든 나이가 됐습니다. 엄마를 원망하며 아빠 품에 안겨 울면서 금오산을 내려갔던 아이가 이제 조심히 내려오라며 의젓하게 엄마 손을 잡아주네요.

자기만 혼자 두고 등산을 갔다며 토라진 둘째딸과도 조만간 함께 금오산에 올라가 봐야겠습니다.

김선희 씨(경북 구미시 봉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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