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마 ‘지금이순간’ 은퇴했습니다… 올해 10번 뛰어 7승 거뒀는데도요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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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전성기인데 왜 그랬냐고요? 마사회서 종마로 바꾸자고 했어요
우수한 자손들 퍼뜨려 달라고요… 국산 씨수말 첫 성공사례 돼야죠

“그동안 수고 많았다.” 경주마에서 씨수말로 전환한 ‘지금이순간’은 문세영 기수(위)와 호흡을 맞춘 16번의 레이스에서 9번이나 우승했다. 문 기수가 6월 30일 제주도지사배 대상경주에서 1위로 골인한 뒤 ‘지금이순간’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다. 한국마사회 제공
“그동안 수고 많았다.” 경주마에서 씨수말로 전환한 ‘지금이순간’은 문세영 기수(위)와 호흡을 맞춘 16번의 레이스에서 9번이나 우승했다. 문 기수가 6월 30일 제주도지사배 대상경주에서 1위로 골인한 뒤 ‘지금이순간’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다. 한국마사회 제공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네 살인 수말 경주마 ‘지금이순간’입니다. 읽기 편하게 띄어 쓰자면 ‘지금 이 순간’인데요, 경주마의 이름은 띄어쓰기를 하지 않는 게 원칙입니다. 양해 바랍니다. 저는 경주마로서 한창때이지만 21일 은퇴식을 하고 현역에서 물러났습니다. 경주마는 사람으로 치면 20, 30대에 해당하는 4, 5세가 전성기랍니다.

전성기인데 왜 은퇴했냐고요? 실력이 시원찮아서 그런 건 아닙니다. 저는 올해 10번 출전해서 1등만 7번 했습니다. 평생 한 번 하기도 힘들다는 1착(着)입니다. 나머지 세 번은 2, 3, 4등을 한 차례씩 했습니다. 상금으로 올해만 8억5016만 원을 벌었습니다. 과천 서울경마공원에서 제일 많은 액수입니다. 2013년 서울경마공원을 대표하는 연도 대표마도 저의 차지였습니다.

2011년 6월 데뷔전부터 우승을 맛보면서 통산 25차례의 레이스에서 13번이나 우승했습니다. 모두 18억6196만7000원의 상금을 따 주인님(최성룡 마주)을 기쁘게 해줬지요. 가장 나빴던 성적은 6등인데요, 무엇보다 고별 레이스였던 15일 2300m 경주에서 2등으로 우승을 놓친 게 아쉽습니다.

제 자랑이 너무 길었습니다. 저의 이른 은퇴는 주인님의 결정입니다. 한국마사회(KRA)는 우수한 국산 종마(種馬)를 발굴하기 위해 전성기의 경주마를 씨수말이나 씨암말로 전환할 것을 권합니다. 경주마가 최고의 몸 상태일 때 종마로 돌려 아버지나 어머니를 닮은 우수한 자마(子馬)를 생산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지요. KRA가 아무 말이나 종마로 전환할 것을 권하는 건 아닙니다. 저처럼 삼관마경주(KRA컵, 코리안더비, 농림축산식품부장관배) 최우수마 수상 등의 이력이 있어야 합니다. 주인님은 5억 원의 인센티브를 받는 조건으로 저를 4세 이후 종마로 전환한 것입니다.

저는 앞으로 제주 금악목장에서 씨수말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합니다. 그동안 국산 경주마가 씨수말로 성공한 사례가 별로 없다고 하는데요, 그런 만큼 최선을 다해 씨를 뿌릴 생각입니다. 캐나다의 부호 에드워드 테일러 소유였던 전설적인 명마 노던댄서(1961∼1990)는 은퇴 후 씨수말이 된 뒤에 교배료가 한때 100만 달러(약 10억6000만 원)를 넘기도 했다네요. 부럽습니다. 2014년은 말의 해입니다. 제가 주인공인 해에 경주로를 마음껏 달릴 수 있었더라면 좋았겠지만 운명을 받아들이고 씨수말로서 뛰어난 경주마 생산에 힘을 보태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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