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올림픽서 팔 꺾였던 사재혁, 투지는 꺾이지 않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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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기 의지 불태우는 역도 간판스타

‘역도 영웅’ 사재혁(큰 사진 왼쪽)이 19일 서울 중구 을지로2가 리복 크로스핏 센티넬 다운타운에서 전국동호인역도대회 금메달리스트 백현철 트레이너와 크로스핏 대결을 펼치고 있다. 경기 원칙은 제한시간 내에 135파운드(약 61kg)짜리 역기 들기와 물구나무서서 팔굽혀펴기를 번갈아 가며 최대한 많이 하기. ‘올림픽 챔피언’과 ‘우리 동네 챔피언’이 맞붙은 이날, 최종 승자는 누구였을까?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역도 영웅’ 사재혁(큰 사진 왼쪽)이 19일 서울 중구 을지로2가 리복 크로스핏 센티넬 다운타운에서 전국동호인역도대회 금메달리스트 백현철 트레이너와 크로스핏 대결을 펼치고 있다. 경기 원칙은 제한시간 내에 135파운드(약 61kg)짜리 역기 들기와 물구나무서서 팔굽혀펴기를 번갈아 가며 최대한 많이 하기. ‘올림픽 챔피언’과 ‘우리 동네 챔피언’이 맞붙은 이날, 최종 승자는 누구였을까?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진짜다! 진짜가 나타났다.’

크로스핏 트레이너 백현철 씨(30)는 10일 깜짝 놀랐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역도(77kg급) 금메달리스트 사재혁(28·제주특별자치도청)이 자신의 수업에 나타났기 때문. 백 씨는 2013 전국역도동호인대회 70kg급에서 2번이나 우승한 ‘우리 동네 챔피언’이다.

사재혁은 10월 23일 인천에서 열린 제94회 전국체육대회 역도 남자 77kg급에서 3관왕(인상 150kg, 용상 190kg, 합계 340kg)을 차지했다. 그 후 한 달여 동안 쉬다가 최근 평소 하고 싶었던 크로스핏을 배우기로 했다. 크로스핏은 역도와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체조동작 등을 활용한 고강도 전신운동이다.

○ 올림픽 챔피언 vs 우리 동네 챔피언

사재혁과 백 씨는 19일 맞대결을 펼쳤다. 종목은 크로스핏이었다. 5분 내에 135파운드(약 61kg)짜리 역기 들어올리기와 물구나무서서 팔굽혀펴기를 번갈아가며 최대한 많이 하는 것이었다.

결과는 ‘우리 동네 챔피언’의 승리. 간발의 차이였다. 사재혁은 역기를 가볍게 들어올렸지만 물구나무서서 팔굽혀펴기에서 애를 먹었다. 웃으며 패배를 인정한 그는 “크로스핏은 역도와 다른 능력이 더 필요한 것 같다. 크로스핏으로 근지구력과 체력, 그리고 정신력을 키워 부상 악몽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말했다.

○ 조카를 안고 싶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사재혁이 재기에 성공할 것으로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는 2012 런던 올림픽에서 역기를 들어올리다 오른쪽 팔꿈치가 꺾이는 부상을 당했다. TV로 지켜보던 국민들은 끔찍한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올림픽 무대에서 6번째 큰 부상을 입은 그의 충격은 더 컸다. 사재혁은 “충격이 커서 아직도 당시의 경기 영상을 보지 못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사재혁은 다시는 역기를 잡지 않을 생각으로 수술조차 하지 않으려 했다. 끔찍한 수술과 재활을 버틸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올림픽에서 팔꿈치를 다친 바로 다음 날 태어난 조카가 그의 생각을 바꿨다. “수술을 하지 않으면 당신이 아끼는 조카를 안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의사의 충고에 그는 수술을 결정했다.

○ 생애 첫 꼴찌

수술은 했지만 후유증은 오래도록 그를 괴롭혔다. 지난해에는 술독에 빠져 살았다. 6년간 몸담았던 강원도청과의 재계약에도 실패했다. 제주특별자치도청이 그를 받아들였지만 연봉은 5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놀다가 다친 것도 아닌데…. 서운하기도 하고 자존심도 많이 상했어요. 그런데 오랜 방황 끝에 이제야 조금은 철이 든 것 같아요. 다시 이를 악물고 밑바닥부터 시작하자고 스스로 다짐했어요.” 그는 올 1월부터 10월 전국체육대회까지 단 한 모금의 술도 입에 대지 않고 재활에 매달렸다.

부상 후 처음 출전한 대회인 7월의 한국실업역도연맹회장배대회에서 그는 당당히(?) 생애 첫 꼴찌를 차지했다. 그의 오른쪽 팔꿈치는 아직도 완전하게 굽혀지지 않았다. “그때 출전 선수 중 가장 먼저 경기에 나섰죠. 역도를 시작한 뒤 처음이었어요. 당연히 꼴찌였죠.” 가벼운 무게를 신청한 선수부터 경기에 나서는 역도 경기에서 그동안 사재혁의 출전 순서는 언제나 뒤쪽이었다. 사재혁은 “그렇게 자존심을 내려놓으니 역기가 올라가더라고요”라고 말했다.

○ 85kg급 한국신기록 도전

사재혁은 내년부터 한 체급 올린 85kg급에 도전한다. 이전처럼 체중 감량을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는 “한 달 정도 크로스핏으로 몸을 단단하게 만들면 보다 편하게 역도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 역도대표팀은 내년 9월 열리는 인천 아시아경기대회에 대비해 지난달부터 태릉선수촌에서 동계 훈련을 시작했다.

사재혁은 내년 초 태릉선수촌에 들어갈 계획이다. 그는 지금까지 아시아경기대회에는 출전하지 않았다. 그는 “올림픽에서 이뤄 놓은 것도 있고, 아시아 역도가 워낙 강세라 우승하지 못할 바에야 나가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한번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고 말했다.

“쉽지 않겠지만 85kg급 한국신기록이 목표예요. 내년이면 서른이라 역도 선수로서는 노장이죠. 그래도 조금 더 힘을 내 세계신기록까지 들어올리고 싶어요.”

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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