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장려금 신청 4명중 1명 ‘무늬만 저소득층’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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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소유 3억대 아파트 살며 재산 숨기고… 맞벌이 아내 수입 감추고…
올 신청 102만가구중 23% 지급 거절

결혼 후 분가해 살던 A 씨(35)는 2011년부터 아버지 소유의 3억 원대 아파트에서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하지만 주민등록은 별도 가구로 유지해 서류상으로는 ‘집 없는 저소득층’으로 분류된다. 그는 이를 근거로 올해 근로장려금을 신청했다.

맞벌이 부부인 B 씨(41)도 식당에서 일하는 아내의 연간소득 1700만 원을 숨긴 채 근로장려금 지급을 요청했다가 국세청의 감시망에 걸렸다. 국세청은 금융회사나 공공기관이 보유한 정보를 분석해 이들이 ‘무늬만 저소득층’이라는 사실을 적발하고 근로장려금 지급을 거절했다.

저소득층의 근로 의욕을 북돋고 소득을 지원하기 위한 근로장려금 신청자 4명 중 1명 정도는 지급이 거절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지원 대상이 확대되면서 부정 수급자나 지급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 신청자 4명 중 1명꼴로 탈락


24일 국세청에 따르면 올해 근로장려금을 신청한 102만 가구(7193억 원) 중 78만3000가구에 5618억 원이 지급됐다. 2009년 제도 도입 이후 처음으로 신청자가 100만 가구를 넘었지만 신청자의 23.2%가 요건 미달로 지급이 제외된 셈이다. 지급 제외 비율은 2009년(18.4%) 이후 가장 높다.

근로장려세제(EITC)는 저소득층의 근로 의욕을 북돋고 실질소득을 지원하기 위한 ‘일하는 복지제도’다. 연간 총소득이 가구당 1300만∼2500만 원 미만이며 무주택(또는 6000만 원 이하 주택 한 채 보유), 가구 구성원 재산 합계액 1억 원 미만 등의 기준을 충족해야 지급 대상이 된다.

최근 제도가 복잡해지고 수급 대상이 늘어나면서 신청 오류나 제도의 허점을 노린 부정 수급도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지원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오래된 임대차 계약서나 위조된 근로소득 지급 확인서를 제출하거나 상가 임대수입을 근로소득으로 위장해 신청하는 사례 등이 적발됐다. 제도 도입 초기에는 근무 기간이 짧아 연간소득이 적은 초임 공무원이나 금융회사 신입사원이 근로장려금을 수령한 사례도 있었다. 이 때문에 지난해 소득기준이 ‘연 소득’이 아닌 ‘연간 환산 급여액’으로 바뀌었다.

○ 2015년부터 신청자 3배로 증가


2015년부터는 음식점 사장, 대리운전사, 골프장 경기보조원(캐디), 간병인 등 자영업자도 근로장려금 지급 대상에 포함된다. 연간 총소득이 4000만 원을 밑도는 가구에 대해 자녀 1인당 최대 50만 원씩 지원하는 ‘자녀장려세제’도 도입된다. 이에 따라 2015년 근로장려금과 자녀장려금 신청자가 올해(102만 가구)의 약 3배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자영업자들의 소득 파악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국세청은 자영업자들이 자발적으로 2014년 소득을 기재해 신고하도록 홈페이지에 서식을 공개했다. 하지만 신고 소득을 일일이 검증하기 어려워 부정 수급자를 가려내는 일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원이 꼭 필요한 저소득층 노인 등이 누락되지 않도록 안내하는 것도 쉽지 않다.

안창남 강남대 교수(세무학 전공)는 “정확한 소득원을 파악하지 못하고 근로장려금 대상을 확대하면 빈곤 감소 효과는 줄고 예산 낭비는 커질 것”이라며 “프랑스처럼 씀씀이를 추적해 소득을 추계하는 기법 등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세청 관계자는 “현재 사전, 심사, 사후 단계에서 3단계 검증을 하고 있다”며 “신청자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해 인력 확충도 요청한 상태”라고 말했다.

:: 근로장려세제(EITC) ::

소득, 부양가족, 주택, 재산의 네 가지 요건을 충족한 저소득 근로자 가구에 근로소득 또는 사업소득 수준에 따라 산정된 ‘근로장려금’을 세금 환급 형태로 지급하는 근로연계형 소득지원제도.

박용 기자 parky@donga.com
#근로장려금#부정 수급#근로장려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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