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신규 순환출자 금지, 투자 위축으로 이어지지 말아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5일 03시 00분


자산총액 5조 원 이상의 대기업집단 소속 계열회사 사이에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그제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했다. 순환출자는 대기업집단의 A사가 B사에, B사는 C사에, C사는 다시 A사에 ‘고리형’으로 출자해 전 계열사에 대해 손쉽게 지배력을 확장하는 방식이다. 상법은 A, B사가 서로 지분을 갖는 상호출자를 금지한다. 순환출자는 내용을 놓고 보면 상호출자와 동일하지만 C사를 끼워 넣어 규제를 피하는 편법이다.

작년 10대 그룹 총수의 지분은 0.94%지만 내부 지분, 즉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은 55.7%나 된다. 1%도 안 되는 지분으로 순환출자 등을 통해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기형적 소유·지배구조를 형성했다. 이는 다른 주주들의 의결권을 침범해 주식회사의 본질을 위협한다. 나아가 총수 일가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다른 주주의 이익을 침해할 가능성도 커진다. 부의 편법 세습, 일감 몰아주기, 부실 계열사 부당 지원 등 각종 불공정 행위가 일어날 수 있는 토양이다. 순환출자 금지가 경제민주화의 핵심 이슈였던 이유다.

신규 순환출자 금지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다. 이번엔 신규 출자만 금지할 뿐 기존 출자는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삼성그룹 현대자동차그룹 등이 기존 순환출자를 해소하려면 수조 원의 자금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한 현실적인 조치다. 하지만 과거의 잘못이라고 해서 영영 눈감아줄 수는 없다.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이 지적했듯이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기존 출자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기업들은 “지배력이 약해지면 외국 투기자본의 경영권 위협에 제대로 대처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과거 SK와 소버린, KT&G와 칼 아이칸 등의 사례에서 보듯 외국 투기자본이 기업 경영권을 위협하는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 기업 처지에서는 지분 감소를 우려해 신규 투자에 신중할 수밖에 없어 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

재계의 우려 중 합리적인 주장에 대해서는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번에 인수합병이나 증자, 구조조정의 경우 신규 순환출자까지 허용한 것도 이런 취지다. 하지만 경영권 방어는 투명하고 성과 있는 경영으로 대다수 주주의 신뢰와 지지를 얻음으로써 이뤄진다. LG처럼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것도 경영권 방어를 위한 대안이 될 수 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