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한국이름은 수내동!… 본업 잊고 지하 녹음실서 살았죠”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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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디밴드 ‘아시안체어샷’ 프로듀서로 나선
美 록밴드 ‘스매싱 펌프킨스’ 멤버 제프 슈로더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녹음 스튜디오에 모인 밴드 아시안체어샷과 미국 음악인들. 왼쪽부터 박계완, 손희남, 라이언 그로스테폰, 제프 슈로더, 황영원. “말은 잘 안 통해도 음악작업엔 아∼무 문제 없었어요!”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녹음 스튜디오에 모인 밴드 아시안체어샷과 미국 음악인들. 왼쪽부터 박계완, 손희남, 라이언 그로스테폰, 제프 슈로더, 황영원. “말은 잘 안 통해도 음악작업엔 아∼무 문제 없었어요!”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한국 이름 수내동! 수내동 어때요? …내동이 형! 크하핫.”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설렁탕집에 열 명의 웃음소리가 일제히 울렸다. 한국인들 틈에 제프 슈로더(34)가 있다. 미국 유명 록밴드 스매싱 펌프킨스(이하 펌프킨스)의 기타리스트다. 국내 3인조 록 밴드 아시안체어샷(박계완 손희남 황영원)의 드러머 박계완이 ‘슈로더’와 비슷한 발음의 한국 이름을 생각해낸 거다. ‘내동이 형’이 웃는다.

슈로더는 내년 3월 국내에 발매될 아시안체어샷의 데뷔앨범 프로듀서를 맡았다. ‘본업’인 펌프킨스는 완전히 잊고 1일부터 20일간 매일 정오부터 오후 9시까지, 180시간을 방배동의 지하 녹음실에서 아시안체어샷의 멤버처럼 살았다. 이번 작품은 연주자인 슈로더의 프로듀서 데뷔작이기도 하다.

“빅, 파워풀 사운드! 올 8월 서울 서교동 공연장에서 아시안체어샷 무대를 처음 보고 놀랐죠. 굉장히 헤비했지만 헤비메탈은 아니었고, 그런 면에서 펌프킨스와도 닿아 있었어요. 그 즈음에 많은 한국 밴드 공연을 봤는데 아시안체어샷은 단연 튀었어요.”

미국에서도 만나기 힘든 록 스타인 슈로더가 ‘서교동 주민’이 된 데는 여자친구의 공이 크다. 지난해 여름 펌프킨스의 내한공연 뒤풀이 자리에서 지인의 소개로 만나 사랑에 빠진 재미교포 2세 연인 말이다. 슈로더의 모친도 재미교포 한국인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에서 비교문학 박사과정을 밟던 슈로더는 2007년 펌프킨스의 새 기타리스트로 발탁됐다. “대학원생 시절에 영문학 불문학 다음으로 한국 문학에 관심을 쏟았어요.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 영문판에 리뷰를 싣기도 했죠. 김지하를 좋아해요. 이상의 ‘날개’의 광팬이죠.”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에서 2년간 한국어 수업까지 들은 그는 회화는 서툴지만 한국 팬들에게 ‘제프 슈로더’라는 한글 이름으로 사인을 해준다.

밴드 스매싱 펌프킨스. 왼쪽에서 두 번째가 리더 빌리 코건, 오른쪽 끝이 제프 슈로더. 워너뮤직코리아 제공
밴드 스매싱 펌프킨스. 왼쪽에서 두 번째가 리더 빌리 코건, 오른쪽 끝이 제프 슈로더. 워너뮤직코리아 제공
슈로더는 올 8월부터 아예 한국 생활을 시작했다. “실은 어머니가 틀어주신 이미자의 노래를 꼬마 때부터 들으며 자랐어요. 그땐 싫었는데 지금은 좋아요. 트로트 스타일. 창법이나 감성이 좋거든요.” 국악이나 1960, 70년대 한국 록의 느낌을 재해석한 아시안체어샷이 슈로더의 귀를 끈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인디밴드인 아시안체어샷은 요즘 말로 하면 ‘계’ 탔다. “처음엔 술친구로 어울렸는데 저희 음반을 프로듀스해 주고 싶다니….”(황영원) “장난하는 줄 알았죠.”(박계완)

슈로더는 이 작업을 위해 2일 미국 시카고에서 펌프킨스 전담 엔지니어인 라이언 그로스테폰까지 소환했다. 리더 빌리 코건의 허락을 얻고 취한 조치였다.

이들이 가장 공을 들인 노래는 ‘밤비’다. 20일 중 4일을 이 노래 편곡에 매달렸다. “제프 형은 막연한 아이디어를 음악적으로 구현하는 창의력이 대단해요.”(손희남) “저도 아시안체어샷이 로큰롤에 접근하는 새로운 방식을 보면서 많이 배웠죠.”(슈로더)

슈로더는 20일 노브레인, 브라이언 같은 한국 음악인들과 함께 ‘크리스마스 타임 인 서울’이라는 디지털 캐럴 앨범도 냈다.

그는 내년 2월 시카고로 돌아가 펌프킨스의 재출항을 준비한다. 지난해 펌프킨스가 낸 앨범 ‘오세아니아’는 그해 최고의 록 음반 중 하나로 꼽혔다. “펌프킨스는 내년 3월 1일부터 1년간 신곡 작업에 몰두합니다. ‘멜론 콜리 앤드 더 인피니트 새드니스’(1995년·1000만 장 이상 판매)처럼 두 장의 정규 앨범을 동시에 만들 거예요. 물론 그전에 코건에게 아시안체어샷 1집부터 들려줄 거예요.”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인디밴드#스매싱 펌프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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