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리베로’ 여오현, 비결은 쉰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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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2월 25일 07시 00분


현대캐피탈 여오현의 목은 시즌 중 항상 쉬어 있다. 코트에서 동료들을 독려하느라 계속 소리를 지르기 때문이다. 여오현이 왜 한국 최고 리베로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징표다. 스포츠동아DB
현대캐피탈 여오현의 목은 시즌 중 항상 쉬어 있다. 코트에서 동료들을 독려하느라 계속 소리를 지르기 때문이다. 여오현이 왜 한국 최고 리베로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징표다. 스포츠동아DB
■ 현대캐피탈 여오현의 감동적인 헌신

코트만 서면 목이 쉬도록 동료들 독려
토스때 영향 줄까봐 손톱도 짧게 정리
“리베로 최고 덕목은 한마디 더하는 것”


프로배구 V리그 남자부 현대캐피탈 여오현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시즌과 비시즌을 구분할 수 있다.

비시즌 때는 조용한 목소리지만 시즌 때는 항상 목이 쉬어 있다. 코트에서 계속 동료들을 독려하면서 소리를 지르기 때문에 목이 성할 날이 없다. 코트에서 자주 구르느라 몸 여기저기에 탈이 날 법도 하지만 정작 시즌 때 가장 아픈 곳은 목이란다. 이것이 여오현의 리베로 역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상징이다.

또 있다. 여오현의 손톱이다. 여자들처럼 항상 단정하다. 손톱은 항상 짧게 한다. 정갈하게 가다듬고 손톱보호제도 바른다. 자신이 디그로 걷어 올리거나 2단토스로 올린 볼에 영향을 줄까봐 손톱에 항상 신경을 쓴다고 한다. 손톱정리는 아내의 몫이다. 집에서 쉴 시간이 되면 가장 먼저 아내에게 손을 내민다.

“내가 한 번 더 구르면 동료들이 편해진다”는 여오현에게 쉰 목소리와 손톱은 상대를 향한 배려의 표시다. 대한민국에서 리베로를 꿈꾸는 많은 선수들의 롤 모델 여오현에게 리베로의 최고덕목이 무엇인지 물었다. 여오현은 기술과 멘탈에 걸쳐 얘기를 했다. 공격수를 하다가 키 때문에 변신했던 자신과 달리 요즘 선수들은 어릴 때부터 전문적으로 리베로 훈련을 받기 때문에 기술적으로는 얘기해줄 것이 많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멘탈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리더가 되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나만 수비를 잘하면 된다는 생각은 버리라”고 했다.

“리베로는 후위에서 선수들을 이끄는 포지션이다. 내가 먼저 앞장서서 동료들을 격려하고 수비위치도 잡아주면서 팀의 활력소 역할을 해야 한다. 디그 몇 개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팀과 융화를 이뤄서 흥을 돋아줘야 한다. 조용하면 안 된다. 그것이 헌신이다. 더 많이 떠들고 말 한 마디 더 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오현이 어려운 볼을 잡아 올려주는 자세를 보면 정성이 느껴진다. 세터에게 혹은 공격수에게 2단으로 올려주는 공에 헌신을 담는다. 그래서 어느 선수보다 더 정확하게 공격수에게 배달된다. 그 정성이 있기에 현대캐피탈은 좌우공격의 불균형 속에서도 힘들게 선두권을 지키고 있다.

개막 전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손꼽혔지만 3라운드까지 보여준 경기력은 의문부호를 줄만하다. 레프트 문성민의 부상공백 탓에 라이트 아가메즈에게 공격비중을 높이다보니 현대캐피탈 배구의 특색이 많이 사라졌다. 그렇지만 여오현이 있기에 허물어지지는 않는다.

2라운드 마지막 경기였던 러시앤캐시전, 3라운드 첫 경기였던 우리카드전도 힘들었다. 스코어는 3-0, 3-1이었지만 상대를 쉽게 제압하지 못했다. 18일 러시앤캐시전 때는 1세트 23-23에서 여오현의 슈퍼디그 2개로 승기를 잡았다. 상대 바로티의 결정타를 걷어 올려 아가메즈에게 연결하는 패턴이었다. 잘한 수비 하나가 팀에 2점의 효과를 줬다. 우리카드와의 21일 경기도 비슷했다. 1세트에 상대 공격에 여기저기가 뚫리며 쉽게 무너졌지만 3세트 고비에서 여오현이 날았다. 중요한 고비의 긴 랠리에서 연달아 3개의 슈퍼디그로 공을 살려내자 현대캐피탈에 기회가 생겼다. 결국 현대캐피탈은 이겼고, 한 숨을 돌렸다. 지금도 여오현의 목소리는 탁하게 쉬어 있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트위터@kimjongk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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