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 겨울올림픽 D-45]“구렁이 태몽 아들, 핫도그로 스케이트 유혹했죠”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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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ANK YOU, MOM<1>모태범 키운 정연화씨

엄마는 아들에게 “고맙다”고 하고 아들은 “엄마 덕분”이라고 한다. 한국 남자 스피드스케이팅의 간판스타로 성장한 모태범(왼쪽)과 그를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키운 어머니 정연화 씨가 팔을 들어 하트를 만들어 보이고 있다.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 남자 500m 금메달리스트인 모태범은 내년 2월 소치 올림픽에서 이 종목 2연패와 함께 1000m 금메달에 도전한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엄마는 아들에게 “고맙다”고 하고 아들은 “엄마 덕분”이라고 한다. 한국 남자 스피드스케이팅의 간판스타로 성장한 모태범(왼쪽)과 그를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키운 어머니 정연화 씨가 팔을 들어 하트를 만들어 보이고 있다.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 남자 500m 금메달리스트인 모태범은 내년 2월 소치 올림픽에서 이 종목 2연패와 함께 1000m 금메달에 도전한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 혼자 크는 자식들은 없다. 자랑스러운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있는 국가대표 선수들의 뒤에는 정성을 다해 이들을 키운 ‘엄마’들이 있다. 지난해 런던 여름올림픽에서 ‘THANK YOU, MOM! 시리즈’를 연재했던 동아일보는 내년 2월 7일 개막하는 소치 겨울올림픽에서 국민들에게 감동의 드라마를 선사할 국가대표 선수들을 키운 엄마들을 소개한다. 첫 번째 주인공은 남자 스피드스케이팅의 간판 모태범(24)을 키운 정연화 씨(52)다. 》

아들은 놀기 대장이었다. 학교만 끝나면 집에 가방을 내던지고는 밖으로 달려 나갔다. 온 동네를 돌아다니다 깜깜해져서야 들어오기 일쑤였다. 누가 봐도 공부보다는 운동이 적성이었다.

처음엔 축구 같은 구기 종목을 시킬까 했다. 그런데 단체 운동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자기가 잘못하지 않아도 함께 책임을 져야 하는 단체 운동보다는 모든 결과가 자신의 손에 달려 있는 개인 운동이 낫겠다 싶었다. 스케이트를 택한 것은 그나마 돈이 많이 안 들 것 같아서였다.

초등학교 2학년 겨울. 아들의 손을 이끌고 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의 야외 아이스링크에 갔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냥 스케이트를 한번 신겨 볼 요량이었다.

그런데 웬걸. 뒤뚱거리며 미끄러질 줄 알았던 아들은 빙판 위에 중심을 잡고 섰다. 다른 아이들이 넘어지는 와중에 처음 스케이트화를 신은 아들은 링크를 겅중겅중 뛰어다녔다. 정 씨는 “어찌나 신통방통한지 깜짝 놀랐다. 당시 이 모습을 지켜본 코치 분의 권유로 본격적으로 스케이트를 시키게 됐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숨겨진 이야기가 하나 있다. 모태범이 넘어지지 않으려 최선을 다한 이유는 핫도그 때문이었다. 모태범은 “그날은 엄청 추웠다. 그런데 엄마가 스케이트를 잘 타면 핫도그를 사준다고 해서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약속대로 핫도그를 사 주셨고 케첩을 잔뜩 뿌려 맛있게 먹었다”고 했다.

그로부터 13년 후인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 모태범은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금메달을, 1000m에서는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내년 2월 열리는 소치 올림픽에서는 500m 2연패와 함께 1000m 금메달에도 도전한다. 만약 그날의 핫도그가 아니었다면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간판선수 모태범도 없었을지 모른다.

○ 엄마는 믿었고, 아들은 보답했다

시작은 핫도그였지만 다음은 로봇이었고, 그 다음은 장난감 비행기였다. 목표가 생기면 아들은 무서울 정도로 집중력을 발휘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돼서는 어느 대회든 나가기만 하면 메달을 따서 돌아왔다.

하지만 질풍노도 시기는 어김없이 그에게도 찾아왔다. 중학교 3학년 즈음이었다. “바퀴 달린 것이면 뭐든지 좋다”던 아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친구들과 어울렸다. 심하다 싶을 정도로 밖으로만 나돌았고 운동을 게을리하면서 성적은 곤두박질쳤다.

모태범은 “당시 새벽, 오전, 오후 등 쉬지 않고 운동을 했다. 또래 친구들은 놀 수 있는데 왜 난 운동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반항을 했던 것 같다”고 했다.

어머니 정 씨는 그 순간에도 아들에게 체벌을 가하거나 혼내지 않았다. 언젠가는 제자리로 돌아올 것을 믿고, 타이르고 설득했다. 약 1년간의 방황 후 모태범은 다시 스케이트화 끈을 동여맸다. 그는 “마음을 다잡게 된 건 어머니 때문이었다. 내 마음대로 해 보니 결과가 안 좋아지는 걸 스스로 깨닫게 됐다”고 했다.

이후에도 모태범이 운동에 싫증을 느낄 때면 정 씨는 “억지로 하려 하지 말고 차라리 나가서 놀아라”며 아들을 다독였다. 모태범의 짧은 일탈은 길어야 이틀이었다. 3일째면 어김없이 제자리로 돌아와 훈련에 열중하고 있었다. 정 씨는 “귀한 아들을 때리거나 심하게 혼낸 적은 아직 한 번도 없다. 혼자서 부딪쳐 보고 스스로 느꼈으면 했다. 다행히 크게 어긋나지 않고 좋은 길을 잘 따라와 줬다”고 했다.

○ 소치에선 어떤 상서로운 징조가…

모태범을 가졌을 때 정 씨는 태몽으로 구렁이 꿈을 꿨다. 그런데 2010년 밴쿠버 올림픽을 앞두고 실제로 집에 구렁이가 나타났다. 올림픽이 열릴 때였으니 아직 추운 2월이었다. 그런데 경기 포천시 소흘읍 자택 담장에 2m쯤 되는 구렁이 한 마리가 몸을 쫙 편 채로 누워 있었다. 사람들이 나타나 잠자리채로 잡으려 하자 구렁이는 나무 위로 올라가 똬리를 틀고 아래를 내려다봤다.

정 씨는 “하도 신기해 휴대전화로 동영상을 찍었는데 그만 지워버려 증거가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이 모두 같이 봤다. 한겨울에 대체 이게 무슨 징조인가 싶었다”고 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모태범은 500m에서 누구도 예상치 못한 금메달을 땄다. 며칠 뒤엔 1000m 은메달까지 목에 걸었다.

밴쿠버 올림픽에서 아들의 경기를 집에서 TV로 봤던 정 씨는 내년 2월 소치 올림픽 때는 직접 경기장을 찾아 아들을 응원할 예정이다. 정 씨는 “그동안 한국에서 열리는 태범이 경기는 항상 경기장에 가서 말없이 지켜봤어요.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서 아들의 경기가 내 눈앞에서 펼쳐진다면 더 감동적이지 않을까요. 실수만 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주는 모습만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믿는다, 아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모태범#정연화#어머니#소치 겨울올림픽#스피드스케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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