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하태원]한미 대통령 기자회견의 차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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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원 논설위원
하태원 논설위원
20일 겨울휴가에 들어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마지막 공식행사 일정은 백악관 기자회견이었다. 송년 기자회견은 44명의 역대 대통령이 240여 년간 지켜온 관행으로 이제는 ‘하늘이 두 쪽 나도’ 거를 수 없는 불문율이 됐다.

오바마가 누군가. 40대 초선 상원의원 출신이자 최초의 흑인 대통령 자리에 오른 뒤 소통의 달인이란 찬사를 듣는 인물이다. 당적(黨籍) 불문, 경력 불문, 정책 추진에 도움이 된다면 누구라도 백악관으로 초청해 오찬과 만찬을 베풀었다. 의회가 미적거리면 곧바로 대중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래도 기자들은 불만이다. 기자회견이 적은 탓이란다. 백악관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은 임기 첫 4년 동안 78회 기자회견을 했다. 2009년 27회, 2010년 19회, 2011년 20회, 2012년 12회로 한 달 평균 1.6회꼴이다. 우리 기준으로는 엄청 많은데 미국 대통령 월평균 2회에는 못 미친다. 조지 W 부시는 월평균 2.18회, 빌 클린턴은 2.01회,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2.85회였다.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는 대통령을 가진 미국의 반응답다. 하지만 오바마는 좀 억울할 수도 있다. 브리핑이야 그렇다 쳐도 임기 첫 4년 동안 인터뷰만 220번을 했는데도 언론과의 소통에 소홀했다는 지적을 받으니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후 국내 언론과의 기자회견이나 언론 인터뷰는 한 번도 안 했다. 대국민 소통창구를 스스로 포기한 셈이다. 해외 순방 때 미국의 워싱턴포스트, 영국의 BBC, 프랑스의 르몽드 등과 7차례 인터뷰를 한 것과 대조된다. 청와대는 4월 언론사 편집·보도국장단, 5월 정치부장단, 7월 논설·해설실장단 간담회 등 ‘사실상’ 세 차례의 기자회견을 했다며 볼멘소리다. 그러나 대통령이 주로 말하는 간담회와 기자들이 알고 싶은 것을 묻는 기자회견은 차원이 다르다.

박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기자회견이나 인터뷰를 안 하는 이유라도 밝히면 속이 시원하겠다. 언론과의 소통 거부로 현 정부의 정책기조 중 중요한 축인 비정상의 정상화, 정치문화의 선진화를 스스로 거스르고 있지는 않은지 따져봐야 한다. 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도행역시(倒行逆施·도리에 어긋나지만 순리를 거슬러 행동한다)를 꼽은 것이 우연일까.

청와대 비서진이나 정부 고위당국자들도 대통령과의 대면접촉에 갈증을 느끼는 판에 기자들까지 기자회견을 자주 하자고 조르는 목소리가 잘 들릴지 모르겠다. 대통령이 국무회의나 수석비서관회의 때 교시(敎示)를 내리면 장관, 청와대 실장, 수석비서관들이 받아 적기 바쁘니 토론은 언감생심일 것이다. 그나마 오후 6시 박 대통령이 집무실에서 인왕산이 보이는 내실로 퇴청한 뒤에는 전화통화 정도가 소통의 전부라고 한다.

우선 외교안보통일 팀 수장들의 대통령 수시 대면보고를 허락해야 한다. 보고서를 읽다 전화로 대통령이 묻는데 “그건 대통령의 생각이 틀렸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간 큰 장관이나 참모는 단언컨대, 없다.

권력의 핵심에서도 외교안보통일 정책에 관한 한 대통령의 생각이 ‘가이드라인’이고 각 부처의 정책책임자들이 움직일 공간은 거의 없다는 푸념이 나오기 시작한다. 박 대통령이 강조하는 원칙이 ‘도그마’가 되는 상황이 됐는데도 바뀔 기미가 없다면 곤란하다. 요동치는 북한, 시계(視界)제로의 동북아 정세에 대한 박 대통령 식 응전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의 성공 여부도 대면보고 성사 여부와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하태원 논설위원 triplets@donga.com
#기자회견#버락 오바마#박근혜#언론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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