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 산타’ 김신욱 등장에 아이들 병실침대서 벌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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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2월 24일 07시 00분


산타클로스로 변신한 김신욱(왼쪽)이 20일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병원 소아혈액종양내과를 찾아 아픈 어린이들에게 용기와 힘을 불어넣었다. 남장현 기자
산타클로스로 변신한 김신욱(왼쪽)이 20일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병원 소아혈액종양내과를 찾아 아픈 어린이들에게 용기와 힘을 불어넣었다. 남장현 기자
■ 소아암 아이들과 뜻깊은 시간 보낸 김신욱

백혈병·골육종 등 아이들 대부분 난치병 앓아
병실 오가며 일일이 사인 티셔츠 등 선물 전달
김신욱 “생전 처음 남 위해 나 홀로 봉사활동”

아이들 “항암 치료도 병도 이길 수 있다” 희망
부모들도 “저렇게 밝은 표정 언제 봤나” 눈물


크리스마스를 닷새 앞둔 20일 오전 9시30분. 서울 송파구 풍납동의 서울아산병원 신관 입구에 SUV 차량 두 대가 멈춰 섰다. 탑승자는 김신욱(25·울산 현대)과 동갑내기 개인 트레이너 이창현 씨, 그리고 김신욱 부모와 여동생이었다. 울산구단 트레이닝복 차림의 김신욱과 일행은 차량 트렁크를 열고 성탄절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빨간 포장지에 담긴 선물 60여 개를 꺼냈다. 그리곤 소아청소년병원 소아혈액종양내과(146병동)로 물건을 날랐다. 이곳은 백혈병과 골육종 등 대개 혈액과 관련해 아픈 어린이들을 치료하는 병동이다.

당초 병원측에 통보했던 김신욱의 방문 약속시간은 오전 11시. 예정보다 한 시간 반이나 일찍 왔다. 혹시 늦을까 새벽녘부터 서둘렀다고 했다. 가족들은 김신욱에게 방문 수일 전부터 “아이들과의 약속에 절대 차질을 빚어선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 일찍 도착한 덕분에 느긋하게 산타 복장으로 갈아입을 수 있었다. 병동 휴게실에서 커피 한 모금을 들이키던 김신욱의 얼굴은 기대감에 잔뜩 상기돼 있었다. “생전 처음으로 남을 위해, 나 홀로 봉사활동이라는 걸 하게 됐다.”

노력한 보람이 있었다. 올해 한국축구를 뜨겁게 달군 국가대표 스트라이커가 분장한 거인 산타의 등장에 힘없이 병실침대에 누워있던 어린이 환자들이 벌떡 일어섰다. 선물도 선물이지만 아이들은 김신욱의 존재 자체를 반겼다. 병실을 돌며 일일이 선물을 전달했을 뿐 아니라 호랑이 엠블럼이 박힌 붉은 티셔츠에 이름을 적어주고 자신의 사인을 남겼다. 이는 아이들에게 엄청난 힘이었다. 회복을 앞둔 어린이 환자들에게도,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도 큰 용기를 줬다. 특히 여러 차례 병이 재발해 입원과 퇴원을 오간 김성현(가명)의 모습이 김신욱의 마음을 울렸다. 성현이는 의료진이 더 이상 손쓸 수 없는 중증 환자다. 엄청난 고통을 감내하느라 항상 인상을 찌푸리고 무뚝뚝한 표정으로 일관해온 성현이는 김신욱과 악수를 나눈 뒤 입원 후 처음으로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성현이 엄마는 “저렇게 밝은 표정의 아들을 언제 또 봤나 싶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박진영(가명)은 침대에서 내려오려다 빈혈로 바닥에 쓰러진 뒤에도 환한 미소와 함께 김신욱의 품에 꼭 안겼다. 최근 골수이식 수술 후 무균실에 격리됐던 이종욱(가명)의 사연도 김신욱의 눈가를 촉촉하게 만들었다. 축구 선수가 꿈인 종욱이는 울산에 거주한 평범한 학생이었다. 종종 아빠 손을 잡고 울산 경기가 열린 울산문수경기장을 찾았다. 갑작스런 병마는 모든 걸 앗아갔다. 하지만 뒤늦게 김신욱의 방문 소식을 접하고 선물과 사인 티셔츠를 받은 종욱이는 의료진에게 말했다. “어떤 항암 치료도, 병도 이길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29일 홍명보장학재단 주최로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릴 소아암어린이돕기 자선경기에도 나설 김신욱은 “요즘 사회가 불경기고 어렵다는데, 봉사활동을 어떻게 할지 몰라 못하는 축구 선수들이 주변에 많다. 내가 받은 넘치는 사랑을 조금이나마 되돌려줄 수 있다면 정말 만족한다”며 밝게 웃었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트위터 @yoshik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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