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분해 플라스틱 그물이 게를 살리네”… 대게 어민들 활짝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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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게 특구’ 영덕 가보니

16일 경북 영덕군 강구면 강구항에서 조업을 마치고 돌아온 한 어민이 생분해 플라스틱을 이용해 만든 대게잡이용 그물을 손질하고 있다.
16일 경북 영덕군 강구면 강구항에서 조업을 마치고 돌아온 한 어민이 생분해 플라스틱을 이용해 만든 대게잡이용 그물을 손질하고 있다.
16일 경북 영덕군 강구면 강구항. 본격적인 대게 철을 맞아 선착장은 소금기를 머금은 바닷바람과 신선한 대게 향으로 가득했다.

오전 9시가 되자 3시부터 대게를 잡으러 출항했던 배들이 조업을 마치고 하나 둘 들어왔다. 하지만 줄어든 어획량 탓인지 대게잡이 어선에서 내린 어부들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았다. ‘우진호’에서 내린 임무성 씨(63)가 그물을 손질하다가 말했다.

“대게는 영덕 사람들 인생 그 자체인기라. 그런데 해가 갈수록 어획량이 매년 30%씩 줄어드는 것 같아. 이놈(대게)들이 잘 자라야 우리도 살 수 있는데…. 물 안에서 썩지 않고 있는 폐그물에 잡혀 죽는 대게라도 줄이자고 그물을 나일론이 아니라 생(生)분해되는 걸로 바꿨어.”

○ 불법 조업에 폐그물 피해까지 겹쳐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국내 대게 어획량(연간 기준)은 2009년 1880t에서 지난해 1590t으로 감소했다. 어부들은 올해 어획량도 지난해보다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임 씨는 “올해는 정부에서 허가한 조업기간이 5월 말까지였지만 어획량이 신통치 않아 대부분 2월에 조업을 중단했다”며 “예전에는 조업을 나가면 700∼800마리 잡았지만 최근에는 500마리가량에 불과하다”고 했다.

대게 어획량 감소는 조업기간이 아닌데도 단속을 피해 어린 대게를 잇달아 잡아들인 영향이 크다. 또 바다에 버려진 폐그물에 물고기가 걸려 죽는 이른바 ‘고스트 피싱(ghost fishing)’도 한 요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고스트 피싱은 어획 자원 손실은 물론이고 수중 환경까지 오염시킨다. 폐그물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치다 다리가 잘린 대게들은 상품성이 크게 떨어진다.

폐그물은 그물이나 통발 등이 태풍에 쓸려 유실되거나 쌍끌이 저인망 어선의 그물이 끊어져 바닷속에 방치돼 있는 것이다. 일부 어민이 무단으로 버린 것들도 있다. 김성훈 국립수산과학원 해양수산연구사는 “고스트 피싱에 따른 어족자원 손실량이 연간 15만 t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며 “돈으로 따지면 2000억 원에 이른다”고 말했다.

○ 생분해 그물로 대게 보호

대게 중 상당수는 바닷속에 있는 폐그물에 엉켜 죽거나 다리 일부가 잘려나간다. 쉽게 엉키는 나일론 그물에 대게 다리가 훼손되는 일도 잦다. 삼성정밀화학 제공
대게 중 상당수는 바닷속에 있는 폐그물에 엉켜 죽거나 다리 일부가 잘려나간다. 쉽게 엉키는 나일론 그물에 대게 다리가 훼손되는 일도 잦다. 삼성정밀화학 제공
어획량이 줄어들고 다리가 잘려나간 대게가 늘어나는 것은 영덕 어민들에게는 큰 걱정거리였다. 상품성이 떨어지는 대게가 많으면 그만큼 소득도 줄기 때문이다.

어민들은 2008년부터 생분해 플라스틱을 이용해 만든 그물로 대게를 잡기 시작했다. 그 결과 올해는 경북 울진, 영덕과 울산지역의 대게잡이 어선 400여 척 가운데 90% 수준인 360여 척이 생분해 플라스틱 그물을 사용하고 있다.

어부 박창규 씨(53)는 “생분해 플라스틱 그물을 기존 나일론 그물보다 10% 저렴하게 살 수 있도록 정부가 보조해 준 게 보급 확대에 큰 힘이 됐다”며 “폐그물 때문에 죽는 대게라도 줄여 보려는 마음으로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생분해 어망은 삼성정밀화학 자회사인 에스엔폴이 가진 생분해 플라스틱 관련 기술을 토대로 국립수산과학원이 개발했다. 생분해 플라스틱 그물은 기존 나일론 그물과 달리 박테리아, 곰팡이, 조류 같은 미생물의 작용으로 물과 이산화탄소로 완전 분해된다. 그물이 유실되더라도 자연 분해돼 폐그물처럼 바다 자원에 장기간 악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삼성정밀화학 관계자는 “생분해 플라스틱이 농업용 필름이나 어망으로 활용되면서 환경 보호 효과가 입증되고 있다”며 “수요 증가에 대비해 설비를 증설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생분해 플라스틱은 다양한 곳에서 기존 플라스틱을 대체하며 환경오염을 줄이고 있다. 삼성정밀화학 관계자는 “생분해 플라스틱을 농업용 필름으로 사용하면 일반 비닐이 불러일으키는 토양 오염 문제를 줄일 수 있다”며 “식탁보나 위생장갑, 대형마트 쇼핑용 비닐로도 활용된다”고 설명했다.

박성욱 국립수산과학원 시스템공학과장은 “국내 생분해 플라스틱 그물 소비량은 연간 500t 수준으로 1만5000t인 일반 그물에 비하면 아직 미미한 편”이라며 “앞으로 꽃게나 참조기 등 다양한 어종을 위한 생분해 플라스틱 그물을 만들어 보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영덕=장관석 기자 jks@donga.com
#대게 특구#영덕#대게 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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