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틀꿈틀 신나는 진로]호주 직업교육제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4일 03시 00분


코멘트

정부와 산업체가 함께 기획… 산업체가 필요한 인력양성

호주 기술고등교육기관(TAFE)인 시드니 울티모(Ultimo) 캠퍼스(왼쪽)와 민간 직업교육기관(RTO)인 멜버른 NECA 스킬센터의 교육 모습.
호주 기술고등교육기관(TAFE)인 시드니 울티모(Ultimo) 캠퍼스(왼쪽)와 민간 직업교육기관(RTO)인 멜버른 NECA 스킬센터의 교육 모습.
정부는 국가직무능력표준(NCS)을 내년까지 개발해 도입할 예정이다. NCS는 수백 개 직업에 필요한 직무능력을 체계화해 교육 과정과 자격 제도를 산업현장 중심으로 개편하는 제도. 정부는 NCS를 바탕으로 교육·직업훈련·자격제도 등을 개편해 ‘학력보다 능력으로 인정받는 사회’를 구현할 계획이다.

호주는 현재 우리나라가 추진하는 NCS와 같은 교육시스템을 20여 년 전에 도입해 성공적으로 운영한다고 평가를 받는다. 최근 호주를 찾아 직업교육시스템을 어떻게 운영하는지 살펴봤다.

전문 직업교육기관 운영

호주의 교육시스템은 호주역량체계(AQF·Australian Qualification Framework)의 큰 틀에서 운영된다. 호주의 교육체계는 크게 ‘직업교육훈련’과 대학 진학을 하는 ‘고등교육영역’으로 나뉜다. 호주는 철저한 능력중심 평가를 한다. 정부는 10개 레벨에서 14개의 공인 자격증을 발급한다.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학생이라도 해당 기술 분야에서 일하려면 교육훈련자격을 다시 취득해야 한다.

직업교육훈련은 크게 국가공인 공립기관인 기술고등교육기관(TAFE)과 등록된 민간교육기관(RTO·직업교육 및 훈련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국가적으로 공인된 4민간훈련기관)에서 담당한다. 대표적인 직업교육훈련기관인 TAFE는 각종 직업에 종사할 인력을 양성하고 직무능력을 향상시키는 일을 주로 담당한다. 호주 시드니에만 7개 캠퍼스에 500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며, 1년에 6만4000여 명이 700여 개 교육훈련과정에 참여한다.

정부와 산업체가 함께 해결책 찾아

호주 직업교육제도는 산업체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특징을 보인다. 산업체들은 교육훈련과정 개발부터 TAFE와 같은 교육기관에 강사를 파견하는 일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호주는 어떻게 산업체의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었을까.

호주 직업교육제도를 총괄하는 멜리사 매퀸 산업부 국장은 “1970∼1980년대에 현재 직업교육시스템을 도입할 때부터 기업협의체들과 새로운 교육시스템을 어떻게 운영할지를 지속해서 협의하며 산업체의 요구사항을 반영하는 과정을 거쳤다”며 “숙련된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새로운 교육시스템이 필요한 당시 산업체들의 현실적인 필요도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호주는 6개주와 2개 특별구로 나뉘어 있다. 현재의 직업교육제도를 도입하려고 할 때 산업체들은 효율적인 인력관리를 위해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있었고, 기업들의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실제로 새로운 직업교육제도의 도입을 국가적으로 논의하던 시기에 호주는 주마다 기술표준이 달라 같은 기준의 직업교육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국가적 공감대가 있었다.

학교 교육 내용과 산업현장이 필요로 하는 능력에 차이가 있어 신입사원들을 재교육하는 데 기업의 적잖은 비용이 투입되고, 중소기업들은 인력난을 호소하는 국내의 현실을 고려하면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점이 적잖다.

교육프로그램 정기적으로 최신화

호주는 직업교육을 받고 배출된 인력에 대한 산업체들의 만족도가 높다. 비결은 산업체가 직업교육훈련과정 개발에 직접 참여하는 것.

호주 직업교육의 특징은 산업체 주도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11개 산업협의체(ISC) 별로 124개 자격과 1180개 능력단위가 있다. 자격별로는 능력이 세분화되어 있다. 교육프로그램은 모듈화되어있어 새로운 기술과 내용이 지속해서 최신화된다. 예를 들어 자동차정비 분야라면 전통적인 자동차 정비 기술에 정보기술(IT)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면 기존 프로그램에 새로운 과정을 추가하는 식이다.

교육과정은 처음부터 산업체 전문가가 참여해 설계한다. 기업체가 필요로 하는 구체적인 업무능력을 교육프로그램에 직접 반영하는 것. 학생들의 교육을 맡는 모든 강사는 최소 3년 이상의 현장경력을 가진 사람으로만 구성된다.

교육은 산업체 요구에 따라 조금씩 변형된다. 똑같은 교육과정을 이수하면 자격증이 발급되는 방식이 아니라 산업체 요구에 따라 융통성 있게 교육을 진행하는 것.

전기전자 분야 교육을 담당하는 민간 RTO 중 하나인 ‘NECA 스킬센터’의 데이비드 벤틀리 캠퍼스매니저는 “기본 교육과정은 같아도 산업체의 요구에 따라 맞춤형 교육이 진행된다. 산업체들의 만족도가 높은 이유”라고 말했다.

▼ “시스템 자리잡는 데 15년 이상 걸려” ▼
멜리사 매퀸 호주 산업부 국장 인터뷰


호주 면적은 남한의 64배지만 인구는 2200만 명에 불과하다. 천연자원은 풍부하지만 상대적으로 노동력이 부족한 탓에 기술 인력에 대한 수요가 높아 상대적으로 직업교육제도가 자리 잡기 유리한 환경을 갖췄다. 하지만 호주도 직업교육제도를 도입한 처음부터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것은 아니다. 호주 캔버라에 있는 산업부 사무실에서 직업교육제도 운영을 총괄하는 멜리사 매퀸 국장(사진)에게 비결을 들었다.

“호주도 처음부터 성공적으로 직업교육제도를 운영한 것은 아닙니다. 현재 제도를 도입한 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기 시작한 것은 5년 전부터였습니다.”

매퀸 국장은 새로운 직업교육시스템이 자리를 잡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호주 정부는 직업교육제도를 도입하면서 기업협의체들과 끊임없이 협의하며 직업교육훈련의 질적인 완성도를 높였다.

매퀸 국장은 “호주직업능력품질원(Australian Skills Quality Authority·ASQA)과 훈련패키지자격 승인을 하는 NSSC(National Skills Standards Council) 등 별도의 기관을 운영하며 교육훈련의 질을 관리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산업체 경영인들이 호소하는 대표적 어려움은 대학 진학보다 현장을 선택한 학생들이 직무를 시작한 시점에 높지 않은 급여 때문에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아무리 좋은 직업교육시스템을 도입해도 근본적인 급여 수준의 차이가 메워지지 않는다면 NCS가 자리 잡기 어려울 것이라는 회의적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호주는 기술직에 종사하는 사람과 사무직에 종사하는 사람의 급여에 일부 전문직을 제외하면 큰 차이가 없다.

매퀸 국장은 “한국 상황에 대한 답을 내놓기는 쉽지 않지만 직업교육을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관점에서 접근하기보다는 학생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이를 통해 성공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쪽으로 접근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호주 직업교육제도에 대한 학부모들의 신뢰가 높아지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학생과 학부모에게 직업교육으로 성공한 이야기를 들려주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 시스템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산업체와 수요자들의 필요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시드니=글·사진 이태윤 기자 wolf@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