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는 꽁꽁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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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채권에 투자자들 신뢰 바닥… 회사채 거래대금 한달새 21% 급감
기업어음 발행도 사실상 개점휴업

신용등급이 AA로 우량 등급인 롯데물산은 이달 초 1000억 원어치의 회사채를 발행했지만 투자하겠다는 곳이 하나도 없었다. 롯데물산은 롯데그룹 계열사로 잠실 제2롯데월드 시행사다. 지난달 헬리콥터가 서울 강남의 고층아파트와 충돌한 사고로 고층빌딩에 대한 우려가 커진 데다 건설업이 장기 불황에 빠지면서 신용등급이 우량한 회사마저도 투자자들이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고 기업어음(CP) 발행도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가 되면서 기업들의 자금조달에 비상이 걸렸다.

22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회사채 발행액은 올해 9월 5조3960억 원, 10월 5조1700억 원에서 11월에는 3조3155억 원으로 급감했다. 회사채 거래대금도 10월 15조2142억 원에서 지난달에는 11조9643억 원으로 21% 넘게 줄었다. 신용등급이 AA인 한 건설사 관계자는 “예전에는 회사채를 내놓기가 무섭게 나갔는데 이제는 금리를 높여도 건설사라는 이유만으로 투자자들이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호소했다.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회사채 유통도 반 토막 났다. 회사채 회전율(발행잔액 대비 거래량 비율)은 올해 1∼10월에는 6∼7%대를 유지했지만 이달 들어서는 3.37%로 곤두박질쳤다.

그나마 신용등급이 높은 회사는 사정이 좀 낫다. 신용등급이 A 이하인 회사들은 철저히 소외되고 있다. KB투자증권에 따르면 회사채 발행액 가운데 A등급 이하 기업의 비중은 올해 상반기에는 20∼30%대를 유지했지만 지난달에는 13%로 뚝 떨어졌다.

CP 발행잔액도 올해 5월에는 60조5774억 원까지 치솟았지만 22일 현재 52억5662억 원으로 급감했다. 만기가 된 CP를 상환하기만 할 뿐 새로 발행하는 CP는 거의 없다는 의미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투자자가 없다 보니 CP 발행을 아예 꿈도 꾸지 못하는 회사들이 많다”며 “이런 기업들은 대부업체나 사채 시장을 기웃거릴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았다.
▼ 가계-기업 ‘자금 보릿고개’ ▼

꽁꽁 얼어붙은 기업 자금조달 시장에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시작은 설상가상이 됐다. 김익상 하이투자증권 연구위원은 “금리가 오르면 채권에 대한 매력이 떨어지는 데다 양적완화 축소는 경기 회복을 전제로 시행되기 때문에 투자 자금이 채권에서 주식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기업 자금조달 시장 경색의 원인은 기업에 대한 투자자의 신뢰가 바닥났기 때문이다. STX, 동양 사태 등으로 믿고 투자했던 기업에 ‘배신’당한 투자자들이 회사채 등을 외면하고 있는 것.

정대호 KB투자증권 선임연구원은 “정부가 살릴 기업은 살리고 부실기업은 정리한다는 큰 그림을 보여줘야 기업에 대한 신뢰도 회복될 수 있다”며 “기업도 스스로 체질을 개선하려는 의지부터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탄탄한 기업이 일시적인 자금경색으로 쓰러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전효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정책금융공사, 연기금 등이 참여해 회사채 전용펀드를 조성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손효림 aryssong@donga.com·신수정 기자
#회사채#기업 채권#기업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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