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 2000달러 마이너리거, 年 1857만달러 슈퍼스타로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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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수, 텍사스와 계약]
2004년 결혼 하원미씨, 힘든 시절 참고 이겨내게 내조
2006년 이치로에 밀려 팀 떠났지만 오히려 전화위복

추신수, 텍사스와 계약
출루 머신, 최고 리드오프(톱타자), 호타준족….

추신수(31)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한 메이저리거로서의 추신수의 모습만 기억하고 있지만 성공의 뒤에는 남모를 인내와 노력이 있었다. 1억 달러의 사나이 추신수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많은 사람의 도움과 사연들이 있었다.

○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은 아내”


부산고를 졸업한 2001년 시애틀과 계약해 미국으로 건너간 추신수의 마이너리그 생활은 여느 선수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땅콩 잼을 바른 빵으로 식사를 해결하고, 비행기 대신 버스를 타고, 호텔 대신 모텔을 전전하며 미국 전역의 작은 도시들을 돌아다녔다. 마이너리그의 ‘눈물 젖은 빵’을 먹은 것이다.

지독한 외로움 속에서도 그는 마이너리그의 모든 단계를 착실히 밟았다. 2001년 루키리그와 싱글A, 2002년과 2003년은 싱글A와 하이 싱글A 팀에서 뛰었다. 더블A 샌안토니오로 승격한 것은 2004년이었다.

이즈음 그는 운명같이 동갑내기 아내 하원미 씨(사진)를 만났다. 2004년 겨울 조용히 결혼식을 올렸고 트리플A에서 주로 뛰던 2005년 첫아들 무빈 군을 얻었다.

마이너리그 선수들의 연봉은 보잘것없다. 30대의 베테랑 마이너리거들도 5만 달러를 받는 경우가 드물다. 20대 초반의 추신수는 한 달에 2000달러 정도를 받았다. 몇 해 전 추신수는 한 TV 방송에 출연해 “나도 힘들었지만 아내는 더 힘들었을 것이다. 잘 참고 못난 나를 내조해준 아내가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하 씨도 “남편을 위해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에 우울증이 생겨 안 좋은 생각까지도 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추신수의 아내 하원미 씨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자녀들의 사진은 미국 현지 언론에도 소개되며 큰 화제가 됐다. 아직 정식 계약이 이뤄지기 전이지만 무빈(왼쪽), 건우 군(오른쪽)과 소희 양(가운데)은 텍사스 유니폼을 입고 있다. 미국 언론들은 “협상 시작 때부터 텍사스 단장이 추신수의 이름이 새겨진 텍사스 유니폼을 추신수에게 선물하면서 적극적으로 영입 의지를 드러냈다”고 전했다. 사진 출처 하원미 씨 페이스북
추신수의 아내 하원미 씨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자녀들의 사진은 미국 현지 언론에도 소개되며 큰 화제가 됐다. 아직 정식 계약이 이뤄지기 전이지만 무빈(왼쪽), 건우 군(오른쪽)과 소희 양(가운데)은 텍사스 유니폼을 입고 있다. 미국 언론들은 “협상 시작 때부터 텍사스 단장이 추신수의 이름이 새겨진 텍사스 유니폼을 추신수에게 선물하면서 적극적으로 영입 의지를 드러냈다”고 전했다. 사진 출처 하원미 씨 페이스북
가족 생각에 더욱 절실함을 갖게 된 추신수는 2005년 마침내 메이저리그 콜업을 받고 메이저리거가 됐다. 그는 “아내를 만난 건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 이치로와의 악연을 기회로


하지만 시애틀에는 너무나 큰 벽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일본 프로야구 최고 스타 출신으로 메이저리그에서도 ‘타격 기계’로 인정받던 일본인 타자 스즈키 이치로(40)였다. 왼손 타자에 포지션도 추신수와 같은 우익수였다.

2006년 시애틀은 수비 범위가 넓은 이치로에게 우익수 자리를 추신수에게 양보하고 중견수로 옮길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이치로는 단번에 거절했다. 결과는 추신수의 트레이드로 이어졌다. 클리블랜드로 이적한 추신수는 이후 “나 같으면 양보를 했을 것 같은데 그러지 않아 화가 났던 것도 사실”이라고 회상했다.

하지만 이 트레이드는 결과적으로 추신수에게 큰 기회가 됐다. 그해 45경기에 출전해 타율 0.295에 3홈런, 22타점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였다. 2007년 부상으로 주춤했으나 2008년 클리블랜드의 주전 우익수로 처음 풀 시즌을 소화하며 타율 0.309에 14홈런, 66타점을 기록했다. 2009년과 2010년에는 2년 연속 3할 타율에 20홈런-20도루 이상을 기록하며 추신수라는 이름을 미국 전역에 알렸다.

○ 가족의 힘으로 더욱 단단해지다

2011년 추신수는 또 한 번의 시련을 맞았다. 음주 운전을 하다 미국 현지 경찰에 체포됐고, 왼손 엄지 부상까지 겹치며 85경기 출장에 그쳤다. 타율도 메이저리그 데뷔 최저인 0.259를 기록했다.

그때도 추신수를 일으켜 세운 것은 가족이었다. 그해 8월 딸 소희를 얻어 세 아이의 아빠가 된 그는 부상으로 쉬는 동안 야구와 세상을 보는 시야를 더 넓혔다. 신시내티로 옮긴 올해는 3년 만에 다시 ‘20-20’ 클럽에 가입하고 출루율에서도 리그 2위(0.423)에 오르며 최고 리드오프임을 재확인시켰다. 추신수와 절친한 한 지인은 “원래 가족을 끔찍이 여기는 추신수였지만 음주 사고 후 가족 사랑이 더 깊어졌다. 이번에 텍사스를 선택한 데도 가족의 영향이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추신수의 가족은 현재 텍사스에서 비행기로 2시간 거리인 애리조나 주에 살고 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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