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 양방언 “웅혼한 한민족 기상 세계 알릴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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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 겨울올림픽 폐회식, 평창 축하공연 음악감독 재일교포 뮤지션 양방언

한중일 3국의 블록버스터 문화상품과 행사 기획자에게서 끝없이 러브 콜을 받는 비결을 물었다. 음악가 양방언은 “다양한 노하우를 갖춘 ‘할리우드’도 대체할 수 없는 동양적 세계관에 대한 이해도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엔돌프뮤직 제공
한중일 3국의 블록버스터 문화상품과 행사 기획자에게서 끝없이 러브 콜을 받는 비결을 물었다. 음악가 양방언은 “다양한 노하우를 갖춘 ‘할리우드’도 대체할 수 없는 동양적 세계관에 대한 이해도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엔돌프뮤직 제공
재일교포 음악가 양방언(53)을 연말에 만나는 일은 고해성사 같다.

‘나이 듦의 서글픔’이라는 자존심 상하는 원죄를 그와 마주하면 잠시 잊을 것 같아서다. 풍성한 곱슬머리와 청년 같은 외모, 해마다 확장일로인 활동영역…. 생일까지 1월 1일인 그의 신년계획은 매년 20대보다 알차다.

20일 오후 서울 세종로에서 만난 양방언은 여전했다.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 주제곡 ‘프런티어’, KBS 다큐멘터리 ‘차마고도’와 ‘도자기’, 임권택 감독의 영화 ‘천년학’, 대작 게임 ‘아이온’의 음악, 대통령 취임식에서 나윤선 안숙선 인순이 최정원과 함께 연주한 ‘아리랑 판타지’의 작곡가….

그런 그가 내년 2월 23일 러시아 소치에서 열리는 겨울올림픽 폐회식의 차기 개최지(한국 평창) 축하공연 음악 감독을 맡았다. 그는 새로운 아리랑을 들려줄 작정이다. 양방언은 “대통령 취임식을 위해 지은 ‘아리랑 판타지’의 속편 격으로 웅혼한 한민족의 기상을 담아 작·편곡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국내 유명 음악인들이 한 무대에 서서 러시아 하늘에 아리랑을 쏘아 올린다.

규모가 큰 악곡을 주로 만들던 그가 요즘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다. 그의 올해 말 키워드가 ‘피아노 3부작’이다. 양방언은 자신의 기존 곡을 피아노 중심으로 재해석한 앨범(14곡 수록)을 13일 내놨다. 20일에는 자신의 첫 피아노 악보집(25곡 수록)을 냈다. 23일에는 콘서트(오후 8시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02-720-3933)를 연다. 제목은 모두 ‘피아노 판타지’. 양방언은 “그동안 화려한 관현악과 컴퓨터 음향으로 장대한 사운드를 만드는 데 집중해온 내가 피아노 앞에 앉았다. 다시 거울 앞에 서 맨얼굴의 자신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동서양 악기가 어우러지는 큰 편성의 대표곡 ‘프런티어’는 신작에서 피아노 한 대로 연주됐다. 5박자의 규칙에서 정밀하게 움직이는 양손 타건이 스위스 시계의 뒷면 같다. 또 다른 대표곡 ‘프린스 오브 제주’는 비발디의 소품처럼 앙증맞게 탈바꿈했다. “이번엔 ‘어떤 것을 뺄지’가 관건이었어요. 다 배제하면 어떤 선율이 남을지, 내가 만든 음악의 정수가 뭐였는지를 재발견할 수 있었죠. 어렵지만 이 시점의 제게 꼭 필요한 작업이었어요.”

그렇다고 해서 그가 주특기인 스케일을 내려놓은 건 아니다. 10월에 낸 그의 두 번째 게임음악 ‘아스타’는 ‘반지의 제왕’ 3부작의 사운드트랙을 연상시키는, 어둡고 공격적이며 화려한 악곡으로 차 있다. 중국 허난 성에 내년 4월 개장하는 대형 역사 테마파크에 울릴 양방언의 음악도 블록버스터 스타일이다. “15분짜리 워터 쇼에 들어갈 음악이에요. 허난 성의 지역 설화를 주제로 음악과 스토리 작업을 동시에 진행해 특이했어요.” 하는 일이 너무 많으니까 선율과 화성이 뇌 속에서 마구 뒤엉켜버리지는 않을까. “항상 헷갈려요. 그래도 여러 아이디어가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긴장감과 신선함을 유지할 수 있으니 좋죠.”

양방언은 신화, 판타지, 역사를 바탕으로 한 애니메이션, 게임, 영화처럼 서사성이 강한 멀티미디어 작업에서 섭외 1순위로 꼽힌다. 내년에도 중국의 대작 온라인 게임, 일본의 장편 영화와 애니메이션 음악 작업이 예약돼 있다. ‘현재의 역사’에도 참여하고 있다.

그는 올 10월 고향 제주에서 ‘제주판타지’ 공연을 열었다. “해녀 분들이 즐겨 부르는 ‘해녀의 노래’ 선율이 사실은 일본 곡인 ‘도쿄행진곡’이었어요. 제가 새로 곡을 얹은 ‘해녀의 노래’를 25명의 해녀 분이 무대에 함께 올라 합창하던 순간을 잊을 수 없어요.”

23일 공연에서는 전국 각 대학 의대생들로 구성된 음악봉사단 ‘스마일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다문화가정 청소년과 가족 100여 명을 객석에 초대한다. “음악의 다양성은 음악적 지평만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이제 음악 안에서의 다양성이 아니라 음악을 접점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양상의 다양성을 추구해보고 싶어요.”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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