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이 정규직 되니 오히려 스트레스 증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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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환경 변화된 여성들 우울증 빠질 가능성 2.57배↑

대형마트에서 시간제근로자로 일하던 주부 윤모 씨(42)는 4월 정규직 전환을 통보받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8개월이 지난 지금 윤 씨는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을 호소한다. 이유는 뭘까.

정규사원이 됐지만 보수는 월 130만 원으로 비슷한 수준이다. 하지만 근무 환경이 더 나빠졌다. 용역회사 소속의 비정규직일 때는 고객 불만을 처리하는 데스크에 주로 앉아서 근무했다. 정규사원이 되고서는 남성이 주로 하는 물품 이동작업에 동원됐다.

근무시간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없는 점도 문제. 비정규직일 때는 유치원생 아들을 돌볼 사람이 없거나 몸이 아프면 용역 직원을 담당하는 팀장에게 말해 쉽게 조퇴나 휴가를 냈다. 정규직 사원이 되면서는 절차가 복잡해지고 상사의 눈치를 봐야 했다. 윤 씨는 “차라리 조금 덜 일하고 덜 벌더라도 비정규직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의 대학에서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는 송모 씨(64·여)도 비슷하다. 올해 3월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됐지만 우울증 증세가 심해졌다. 용역업체 소속일 때는 힘이 닿을 때까지 제한 없이 일했다. 대학의 정규직원이 되면 65세가 되는 내년에 정년퇴직해야 한다. 이 학교는 정규직 퇴직 이후에 다시 비정규직으로 재취업하지 못하도록 한다. 27년째 투병 중인 남편을 돌보는 송 씨는 정든 직장을 떠나 또다시 구직 활동을 해야 하는 처지다. 이처럼 정규직 전환 뒤 스트레스나 우울증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름만 정규직일 뿐 노동조건과 임금은 더 나빠지는 때가 많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현상은 가사,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여성에게서 특히 심하다.

김승섭 고려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지난해 ‘근무환경 변화와 우울감’이란 논문을 통해 이 같은 현상을 분석했다. 이 논문은 스칸디나비아학회지 ‘노동환경 변화와 우울감’에 소개됐다. 논문에 따르면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여성이 우울증에 빠질 가능성은 정규직 여성보다 2.57배 높았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와 동시에 좀 더 나은 정규직 일자리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라고 말했다. 의학적으로는 이런 현상을 적응장애로 설명할 수 있다. 이직 승진 등 근무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할 때 심리적 위축과 스트레스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

적응장애는 스트레스를 주는 상황을 없애면 2개월 이내에 사라질 수 있다. 다만 근무환경을 바꾸면서 생긴 적응장애는 원인을 곧바로 개선할 수 없는 때가 많다. 심하면 우울증, 불안장애, 공격적인 행동, 불면증, 식욕감퇴까지 이어진다. 최정석 보라매병원 교수(정신건강의학과)는 “일단 자신이 겪는 우울증의 원인을 알아야 한다. 초기에는 상담 치료를 받다가 증상이 심해지면 항우울제를 투여하는 등 적극적인 치료가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 이 기사는 고려대 미디어학부와 함께한 공동기획입니다. 취재에는 보건행정학과 4학년 강기준 씨, 영어영문학과 4학년 우한솔 씨가 참여했습니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정규직#근무 스트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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