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부모 가정에 ‘몰래 산타’ 오셨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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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산타본부, e메일로 사연 접수… 어려운 이웃에 희망 선물

크리스마스에 어려운 이웃에게 꿈과 사랑을 전하는 ‘사랑의 몰래산타 광주본부’ 자원봉사자들이 21일 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상규 집을 찾아 깜짝 산타이벤트와 한 아름 선물을 안겨줬다. 광주=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크리스마스에 어려운 이웃에게 꿈과 사랑을 전하는 ‘사랑의 몰래산타 광주본부’ 자원봉사자들이 21일 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상규 집을 찾아 깜짝 산타이벤트와 한 아름 선물을 안겨줬다. 광주=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상규야 노올∼자!”

21일 오후 7시 반 광주 서구 동천동의 한 아파트. 한 아름 선물을 안은 산타클로스 5명이 아파트 현관문 앞에서 이름을 부르자 김상규(가명·10·초등 2학년) 군이 문을 빼꼼히 열고 얼굴을 내밀었다. 산타들이 “안녕” 하며 인사를 건네자 상규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아빠 김모 씨(49)를 쳐다봤다. 아빠는 “어서 인사드려야지”라며 상규의 등을 떠밀었다.

“안녕하세요. 근데 진, 진짜 산, 산타 맞아요?”

상규는 여전히 산타들의 방문이 믿어지지 않는 표정이었다. 한 산타가 “착한 일을 많이 한 상규한테 선물 주려고 왔지요”라며 머리를 쓰다듬자 상규는 그제야 배시시 웃으며 선물 보따리를 받아들었다.

산타들은 아빠와 단둘이 사는 상규를 위해 특별한 공연을 준비했다. 왕관 모양의 풍선을 만들어 머리에 씌워주고 파란 보자기 속에서 장미꽃이 나오는 마술을 보여줬다. 빨간 방울과 오색 전구로 예쁜 트리도 만들었다. 케이크에 초를 꽂고 불을 붙인 상규는 소원을 빈 뒤 아빠와 함께 촛불을 껐다.

산타의 방문은 상규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며칠 전 ‘사랑의 몰래산타 광주본부’에 e메일(lovekorea94@gmail.com)로 사연을 보냈기 때문이다. ‘상규 아버지는 일용직 노동자입니다. 일이 없을 때가 더 많아 경제적으로 힘듭니다. 그럼에도 상규는 친구들과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아버지랑 씩씩하게 자라는 것이 무척이나 대견스럽습니다. 상규를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산타들이 대신 보여주세요’라는 내용이었다.

e메일을 받은 광주본부는 상규 아버지와 함께 깜짝 파티를 준비해 이날 방문한 것.

‘사랑의 몰래산타 광주본부’는 광주 지역 시민단체들이 2004년부터 20, 30대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해 산타교육을 시킨 뒤 크리스마스에 어려운 이웃에게 꿈과 사랑을 선물하고 있다. 서울, 부산, 대구, 대전, 인천 등 전국 10여 곳에도 ‘사랑의 몰래산타 본부’가 운영되며 매년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다.

김 씨는 “상규 엄마가 2년 전 가출한 뒤 아이가 말을 더듬고 낯을 가려 정신건강의학과에 치료를 받으러 1주일에 두 번씩 가야 하는데 일 때문에 한 번밖에 못 데려가는 게 미안할 뿐”이라며 “상규가 올해 어린이날 게임기를 사달라고 해 혼을 냈는데 이번에 산타 선물을 받게 돼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산타의 파티와 선물꾸러미에 정신이 팔려 있던 상규가 갑자기 아빠에게 종이에 싸인 두툼한 것을 내밀었다. “아빠. 이, 이것 드, 드릴게요. 산, 산타한테 받은 건데…추운 날 하고 다니세요.”

한쪽 면에 하얀 솜털이 달린 목도리였다.

광주=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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