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00억 금융사기범, 14년만에 송환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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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환란때 사기극 벌여 15년형, 의사 매수해 형집행정지… 中 밀항
中서도 사기치다 7년째 복역중… 정부, 시효 연장위해 中에 인도요청
일주일 국내 수감뒤 돌려보내기로… 中서 형기 채우면 국내서 또 옥살이

중국에서 국내 사법당국으로 넘겨진 변인호 씨가
20일 오후 2시경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변씨는 일주일 후 중국으로 송환돼 남은 형기를 복역한다. 인천=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중국에서 국내 사법당국으로 넘겨진 변인호 씨가 20일 오후 2시경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변씨는 일주일 후 중국으로 송환돼 남은 형기를 복역한다. 인천=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1999년 6월 26일, 인천국제여객터미널. 변인호 씨(56)는 중국 다롄(大連) 항으로 가는 배에 유유히 올라탔다. 변 씨는 1997년 경제난이 가중된 틈을 타 유령회사를 차린 뒤 시중은행과 자금난에 빠진 기업, 대학을 상대로 3900억 원대 금융 사기극을 벌인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로 구속 기소된 인물. 당시 서울지검 특수1부가 대대적으로 수사를 벌여 1998년 8월 법원에서 사기 혐의로 15년형을 선고받았다.

구치소에 있어야 할 변 씨가 어떻게 중국행 배에 올라탔을까. 이는 의사와 사건 수임 변호사, 교정공무원, 뇌파 의료기사 등 다양한 분야의 ‘조력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변 씨의 항소심 변호인 하모 씨는 변 씨를 빼돌리기 위해 의사부터 접촉했다. 일식집에서 “소견서를 유리하게 써 줘 외래병원에서 진료받을 수 있게 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현금 3000만 원을 건넸다. 변호사가 속한 변호사 사무실의 사무장은 뇌파검사를 담당한 의료기사에게도 “결과가 나쁘게 나오게 해 달라”며 서울 강남의 단란주점에서 700만 원을 줬다. 변 씨 담당 교정공무원을 서울구치소 내 관사 앞에서 만나 1000만 원을 주고 자신과 미리 짜 둔 해당 의사가 속한 병원에서 진료를 받게 하는 등 전방위로 로비를 벌였다.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던 변 씨는 1998년 12월, 항소심이 진행 중이던 서울고법에서 ‘고혈압과 혈뇨 배출이 심하다’는 등의 이유로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받아 낸 뒤 병원 입원까지는 성공했지만 사기 피해자들이 고용해 문 앞에 하루 종일 세워 둔 사설 경호원이 걸림돌이었다. 이번에는 변 씨 누나가 나섰다. 경호원에게 접근해 “내가 해외에 부동산이 많은데 동생을 빼 주면 외국에서 편하게 살게 해 주겠다”고 회유했다.

하지만 이렇게 중국으로 도주한 변 씨는 중국에서 또다시 사기를 치다 공안 당국에 적발됐다. 결국 2006년 사기죄로 12년형을 선고받았고 현재 중국 선양(瀋陽) 구치소에서 7년째 복역 중이다.

문제는 변 씨가 중국 형기를 다 채운 뒤 국내에 송환되면 국내에서 선고받은 15년형의 집행 시효가 끝나 버린다는 점이다. 형 집행 시효는 확정 판결을 받은 날짜로부터 계산된다. 현행 형법상 징역 10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았을 경우 형 집행 시효는 15년인데 이 시효는 해외 도피 기간 중에도 계속 진행된다. 변 씨의 경우 1999년 3월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았기 때문에 15년이 되는 내년 3월 2일 이전에 국내에서 형을 일부라도 집행하지 못하면 전체 형 집행이 면제돼 버린다.

한중 양국을 무대로 한 금융 사기꾼의 유례없는 동시적인 형 집행 때문에 ‘한국에서 형을 살게 해야 하니 잠깐이라도 보내 달라’는 우리 정부와 ‘중국에서 형 집행을 마쳐야 보내 줄 수 있다’는 중국 측 입장이 오래 맞서 왔다. 중국 정부는 “수감 중인 범죄자를 다른 나라로 잠시 보낸다는 것은 전례가 없다”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사람에게 형 집행 시효를 둔다는 제도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난색을 표하며 인도를 미뤄 왔다.

결국 한중 당국은 수년간의 협의 끝에 ‘절충안’을 마련했다. 변 씨를 단 일주일만 귀국시켜 형을 잠깐이라도 살게 하자는 것. 중국 도피 길에 오른 지 약 14년 반 만인 20일 변 씨는 인천공항을 통해 압송돼 곧바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그는 사전 협의에 따라 일주일 뒤 중국으로 다시 송환돼 2018년 4월까지 남은 형기를 복역한다. 그리고 다시 국내로 송환돼 복역하지 않았던 15년형(남은 형기 13년 11개월)을 살 예정이다.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금융사기범#변인호#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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