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세형의 기웃기웃]겨울이 싫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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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건대 나는, 겨울이 싫었다.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는 내가 겨울이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온몸이 아파”. 있는 대로 껴입은 탓에 옷 무게만도 상당한데, 하루 종일 온몸에 힘을 잔뜩 주고 웅크리고 다니니 온몸이 아팠다. 게다가 눈 오면 차 막히지, 질척질척 신발 엉망 되지, 밖에 있다 실내로 들어오면 안경 뿌예져 아무것도 안 보이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수박도 못 먹고! 겨울이 싫은 이유는 얼마든지 계속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언제나 겨울은 내게 끔찍한 존재였다.

그날은 심지어 눈이 왔다. 아, 오늘 꼭 재활용 쓰레기 버려야 하는데. 첫눈이고 뭐고 나는 짜증부터 났다. 역시나 온몸에 힘을 준 채 분리수거를 하고 돌아오는데, 막 닫히고 있던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 서 있는 초등학교 고학년쯤 돼 보이는 여자아이. “안녕하세요!” 추위에 발그레해진 볼로 환하게 웃고 있는 아이의 얼굴과, 아이 너머 거울로 보이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인상을 쓰고 있는 내 얼굴이 묘한 대비를 이룬 엘리베이터 안. “저는 겨울이 너어어무 좋아요!” 나는 잠시 멍해지고 말았다. 완전한 무방비 상태에서, 아이의 살갑고 밝은 목소리로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랄까. “왜냐하면요, 겨울엔 눈도 오고 방학도 있고 엄마가 이번 방학엔 꼭 스키장 데려가 주신다고 했거든요! 언니도 겨울 좋아하세요?” “….” 땡그란 눈이 연신 방글방글. “풉.” 나는 결국 웃고 말았다. 그리고…, “네, 저도… 좋아해요…. 겨울.” 아이의 해맑고 따뜻한 그 웃음에 대고 나는 차마, “아니? 나는 싫거든? 겨울 저어엉말 싫거든?” 그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아이와 헤어지고 집으로 들어왔는데 괜히 피식피식 웃음이 났다. 내가, 내 입으로 말했어. 좋아한다고, 겨울을…. 그 상황이 하도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났다. 그래서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나는 정말 겨울을 100% 완벽하게 싫어하는가? 겨울을 좋아할 만한 이유는 하나도 없어? 그런데… 제법 있었다, 겨울을 좋아할 만한 이유도. 포장마차의 따뜻한 어묵국물! 그거 겨울 아니면 그 맛 안 나지. 붕어빵, 호빵, 호떡, 팥죽, 그래 겨울 별미가 얼마나 많아? 그리고 무엇보다 만화책과 귤. 따뜻한 이불 속에서 발가락 꼼지락거리며 귤 까먹으며 보는 만화책! 맞아, 만화책은 겨울이지. 그래서 내가 갖고 있는 만화책들 중엔 책장 귀퉁이가 노랗게 물든 것들도 꽤 된다. 갑자기 신이 났다. 나는 바로 만화 전문가 친구에게 문자메시지를 넣었다. “요즘 재밌는 만화책 뭐 있어?”

나는 조금, 겨울이 좋아졌나 보다. 넌 내가 싫어하는 애! 단단히 찍어 놓고 두 번 생각해볼 맘도 갖지 않았던 겨울이 말이다. 어쩌면 세상엔 100% 나쁜 것, 100% 싫은 것, 100% 좋은 것은… 없는 거 아닐까? 다만 내가 그를, 단단히 찍어 놓고 한쪽 면만 바라보고 있을 뿐. 보지 않을 거야, 너의 장점 따윈 찾고 싶지 않아. 어쩌면 나는 내내 그렇게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봐야 내 마음만 미워질 뿐인데. “저는 겨울이 너어어무 좋아요!” 예쁜 아이의 웃음 너머 엘리베이터 거울로 보이던 내 얼굴,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인상을 쓰고 있던 못난이, 밉상, 내 얼굴처럼 말이다.

강세형 에세이스트
#겨울#눈#아이#나쁜 것#싫은 것#좋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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