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北의 ‘가차 없는 보복’ 쉬쉬한 것도 자랑스러운 불통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1일 03시 00분


북한이 19일 낮 서해 군 통신선을 통해 도발을 위협하는 전화통지문을 보내 왔다. 국방위원회 정책국 서기실 명의로 된 전통문은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우리의 최고 존엄에 대한 특대형 도발을 반복한다면 우리의 가차 없는 보복 행동이 예고 없이 무자비하게 가해질 것”이라는 내용이다. 김정일 사망 2주기인 17일 서울시내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사진을 붙인 인형을 불태운 데 대한 반발로 보인다. 우리 군은 즉각 국방부 정책기획관실 명의로 “도발할 경우 단호하게 응징할 것”이라고 통보했다.

북한에서 2인자인 장성택을 숙청한 이후 혼란스러운 상황을 감안할 때 이번 위협은 가볍게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북한 전통문의 수신인은 대통령국가안보실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셈이다. 북한이 국방위원회 명의로 청와대에 전통문을 보낸 것도 박근혜 정부 들어 처음이다. 통상 관영매체를 통해 공개적으로 대남 위협을 하던 것과 달리 군 통신선을 이용해 비공개로 한 것도 예사롭지 않다.

그럼에도 정부는 언론에 이 사실이 보도되기 전까지 쉬쉬했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비공개로 보낸 것이기 때문에 우리도 비공개로 답신을 보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공개적으로 내년 1월 말∼3월 초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북한의 도발 위협을 공개하거나 공개하지 않는 기준은 뭔가. 1994년 1차 북핵 위기 이후 우리 국민은 북한의 어떤 도발 위협에도 동요하지 않았다. 연평도 포격이나 천안함 폭침 때도 차분하게 대응했다.

박 대통령의 원칙적인 대북 정책은 비교적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안보야말로 국민과의 소통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분야다. 박 대통령도 나라를 지키는 것은 무기만이 아니고 애국심과 국민의 하나 된 힘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북한의 도발 위협을 있는 그대로 공개하지 않은 것은 그런 점에서 아쉽다.

이정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18일 “가장 억울한 게 불통 (지적)”이라며 “저항에 굽히지 않는 게 불통이라면 5년 내내 불통 소리를 들을 것이다. 그건 자랑스러운 불통”이라고 말했다. ‘자랑스러운 불통’이란 없다. 자랑스러운 소통과 국익을 위한 보안 유지, 둘만 있을 뿐이다.
#북한#도발#위협#전화통지문#언론#비공개#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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