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스토리텔링 in 서울]왕의 사냥터, 경마장 거쳐 시민들 쉼터로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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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섬의 발자취

조선시대 왕의 사냥터이자 군마를 키우던 목장이었던 뚝섬에는 한국 최초의 경마장이 들어서기도 했다(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뚝섬 한강공원 전경. 서울시 제공
조선시대 왕의 사냥터이자 군마를 키우던 목장이었던 뚝섬에는 한국 최초의 경마장이 들어서기도 했다(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뚝섬 한강공원 전경. 서울시 제공
겨울방학을 맞는 아이들은 마냥 신이 났다. 19일 뚝섬·여의도 한강공원 눈썰매장이 개장하면서 설원을 즐기며 추억 만들기에 바쁘다. 뚝섬 한강공원은 여름철이면 시민들의 물놀이장으로 사랑받는다. 봄·가을엔 서울의 허파인 서울숲을 거닐며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지금은 사시사철 시민들의 놀이터지만 조선시대에 뚝섬은 왕만이 즐길 수 있던, 백성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던 성스러운 놀이터였다.

뚝섬은 조선시대 왕의 사냥터이자 군사 훈련장이었다. 예로부터 풍광이 아름답고 들짐승이 많아 태조 때부터 성종 때까지 151번이나 임금이 행차했다는 기록이 있다. 왕이 행차하면 왕의 상징인 독기(纛旗·소꼬리나 꿩꽁지로 장식한 큰 깃발)를 꽂았다. 한강과 중랑천으로 둘러싸인 섬 같다고 ‘독기를 꽂은 섬’이라는 뜻의 ‘독도(纛島)’로 불리다 이후 뚝섬으로 바뀌었다.

독기를 꽂았던 장소는 지금의 서울 성동구 성수동 천주교성당 터다. 왕의 깃발도 성당도 이젠 없지만 성당 터에 자리한 300년 넘은 느티나무 두 그루가 옛 이야기를 전해주는 듯하다. 오래전부터 주민들은 느티나무를 마을수호신으로 받들며 제를 지내왔는데,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나뭇가지를 붙잡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뚝섬 주변엔 ‘살곶이벌’이라는 지명도 전한다. 왕자의 난 이후 함흥으로 떠났던 태조가 한양으로 돌아오다가 여기서 태종과 마주쳤다. 태조는 분노를 참지 못해 화살을 쏘았고 태종이 급히 화살을 피해 기둥에 꽂혔다. 그 후로 이곳을 화살이 꽂힌 땅이라는 의미에서 ‘살곶이벌’라고 불렸다. 중랑천이 청계천과 합류하여 한강으로 접어들기 직전 성동구 사근동과 성수동을 잇는 성동교 바로 위쪽에 지금도 ‘살곶이다리’가 있다. 현존하는 다리 가운데 가장 오래된 돌다리로 1483년 완공됐다. 반 이상 손실된 다리를 1973년 서울시가 수리 복원했고, 1967년 사적 제160호로 지정되었다가 2011년 보물 제1738호로 승격됐다.

뚝섬은 말과 인연이 깊다. 조선시대에 군마(軍馬)를 키우는 말목장이었던 이곳에 1954년 경마장이 문을 열었다. 당시에는 말이 부족해 경주마 대신 조랑말이 달렸고, 경주로 한가운데에는 채소밭이 있었다. 1968년에는 경마장 가운데 작은 골프장까지 들어섰다. 뚝섬경마장은 1989년 과천경마장이 개장하면서 문을 닫았고, 골프장도 1994년 문을 닫았다. 하지만 지금도 서울숲 공원에는 기수(騎手) 동상이 남아 있어 과거 이곳이 경마장이었음을 알려준다.

뚝섬 주변은 강태공들의 명당이기도 했다. 성동구 금호동과 응봉동의 경계에 위치한 입석포는 예로부터 큰 돌이 우뚝우뚝 서 있는 곳으로 유명했다. 거대한 ‘입석(立石)’들이 강변에 있어 낚시터로 안성맞춤이었고 많은 문인들이 ‘입석조어(立石釣魚)’라 부르며 월척의 꿈을 꿨다.

이처럼 뚝섬은 한꺼번에 역사 속 타임머신 여행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서정협 서울시 관광정책관은 “한강스토리텔링 투어, 과거 한강에서 일어났던 흥미로운 사건을 엮은 현장극, 자전거로 달리는 시간여행 등 뚝섬을 배경으로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며 “뚝섬을 비롯해 여의도, 반포, 난지 한강공원의 숨은 이야기를 집중 발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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