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전두환 프리미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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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와 소더비 같은 국제적 경매사들은 경매 도록에 프랑스어로 ‘프로브낭스’를 밝힌다. 프로브낭스는 미술 작품의 내력이나 출처를 뜻하는 단어로 어떤 소장 경로를 거쳐 왔는지를 보여주는 ‘작품 이력서’나 마찬가지다. 작품의 가치와 진품 여부를 평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거물 컬렉터가 소장한 작품이라면 가격을 높이고, 반대로 프로브낭스가 불투명하면 경매에 내놓기도 힘들다.

▷“내 이름은 찰스 사치다. 나는 아트홀릭이다.” 영국의 광고재벌 찰스 사치가 2009년에 펴낸 책 제목이다. 사치는 데이미언 허스트를 일약 세계적 스타작가로 만든 현대미술의 큰손이다. 1990년대 들어 그가 yBA(젊은 영국 작가들·young British Artists)란 이름으로 소개한 허스트를 비롯한 신진 작가들은 국제 무대에서 주목받는 쟁쟁한 작가들로 떠올랐다. 현대판 메디치인지 투기꾼인지 평가는 엇갈리지만 뛰어난 안목을 인정받는 덕에 사치 컬렉션에 들어가기를 꿈꾸는 무명작가는 여전히 많다.

▷우리나라 옛 서화를 보면 소장했던 사람의 도장이 찍혀 있는 경우도 있다. 소장인(所藏印)을 보면 작품이 어떤 소장가의 손을 탔는지 그 여정을 알 수 있다. 안목 높은 컬렉터의 소장인이 찍혀 있으면 작품 가치도 당연히 높아진다. 현대미술 부문에선 해마다 한 잡지 조사를 통해 홍라희 리움미술관장이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꼽힌다. 화랑 주인들은 그가 전시장에 나타나면 반색한다. 그가 전시에 다녀갔다거나 작품을 샀다는 소문이 작가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 추징금 환수를 위한 전 씨 일가 컬렉션의 특별경매가 11일 케이옥션, 18일 서울옥션에서 잇달아 완판을 기록했다. 두 회사의 오프라인 경매에서 팔린 201점의 낙찰 총액은 53억4000만 원. 2008년 이후 침체된 미술시장을 감안했을 때 ‘전 씨 일가 소장품’이란 프리미엄이 작용했다는 평가가 많다. 전 씨 일가의 미술품이 세금 환수란 1차 목표를 넘어 미술시장이 되살아나는 기폭제가 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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