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성원]‘분노의 정치’엔 미래가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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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원 정치부장
박성원 정치부장
요즘 송년회 참석할 때 유의사항. ①박수는 건성건성 쳐서는 안 되고 두 팔을 얼굴까지 들어 끝까지 친다. ②다리를 꼬고 삐딱하게 앉아선 안 된다. ③앞에선 순종하는 체하며 속으론 딴마음을 먹어선 안 된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자신의 고모부이자 권력서열 2위였던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처형하면서 내세운 죄목을 빗대 시중에 나도는 우스갯소리다.

‘삐딱한 마음을 먹을 자유’조차 허락되지 않는 북한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판결문보다 충격적인 것은 “북한의 장성택 처형과 (남한의)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이 뭐가 다르냐”는 식으로 일갈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인식이다.

장성택은 체포된 지 4일 만에 재판정에 끌려나왔다가 곧바로 처형됐다. 이석기 의원은 20명이 넘는 변호인의 도움을 받으며 법정에서 석 달째 검찰과 증거능력을 따지고 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에 희망이 없는 것이) 박근혜 씨를 대통령으로 뽑아서 그렇다는 얘기도 있다”고 말하는 유 전 장관에게선 지난 대선과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분노가 짙게 묻어난다.

민주당 문재인 의원도 자신의 북콘서트에서 “지난 1년간 박근혜 대통령 때문에 국민이 고통스러운 퇴행을 겪게 됐다.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으로 깨끗한 선거를 무너뜨렸다”며 지지자들의 분노를 한껏 끌어올렸다. 영화배우 출신으로 민주당 대표직무대행을 지낸 문성근 씨는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선거밖에 없다”면서 “그걸로 안 되면 ‘민란’으로 뚫어야 한다”는 말을 했다. 대선 때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던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는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박근혜와 새누리 권력, 나라 운영 못하겠으면 사죄하고 내려와라, 이 시궁창 같은 자들아”라는 글을 올렸다.

이들은 지난 대선을 국가정보원의 불법 개입 때문에 ‘네다바이’당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 큰 패인들은 민주당이 펴낸 300여 쪽이 넘는 대선평가서에 상세히 담겨 있다. 그중에서도 계파정치로 인한 당의 분열, 당에 대한 국민의 신뢰 저하 등은 지금도 여전히 문 의원과 민주당의 취약점으로 꼽힌다.

문 의원 자신도 최근 출간한 대선회고록 ‘1219 끝이 시작이다’에서 “우리가 민주화와 진보에 대한 자부심으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선을 그어 편을 가르거나 우월감을 갖지 않았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썼다.

이 말이 진심이라면 같은 당 양승조 의원이 박 대통령에 대해 ‘암살’ ‘선친의 전철 답습’ 운운했을 때, 장하나 의원의 ‘대선 불복’ 발언이 논란을 빚었을 때 문 의원이 나서 자제를 요청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400여 개 단체로 구성된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가 ‘민주회복’ ‘못 살겠다 갈아엎자’ 등의 팻말을 들고 서울 광화문 일대를 행진해도 잡혀가지 않는 것은 역설적으로 한국의 민주주의가 안녕하다는 점을 웅변하고 있음을 야권은 정말 모르는 걸까?

민주당의 한 원로인사는 “1987년 대선 때 서울 보라매공원에 100만 명이 모였다. 지방에 가도 상당한 수가 모여 이길 것이라고 확신했다. 한데 알고 보니 같은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자기들끼리 한풀이하러 다녔지만 표의 확장은 없었다는 얘기다. 민주당과 문 의원은 진짜 분노해야 할 북한의 반인권적 공포정치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명확히 구분하고 정권에 대한 반감을 자극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식의 ‘분노의존형’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2017년의 미래는 또다시 먹통이 될지도 모른다.

박성원 정치부장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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