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기는 한국 물류… 정부가 ‘성장 주사’ 놔줘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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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류산업이 미래의 국가경쟁력<下>

DHL 등 글로벌 물류기업은 정부의 지원 속에 적극적인 인수합병을 거치며 ‘대형화’하고 있다. 사진 출처 DHL 홈페이지
DHL 등 글로벌 물류기업은 정부의 지원 속에 적극적인 인수합병을 거치며 ‘대형화’하고 있다. 사진 출처 DHL 홈페이지
1969년은 인류가 최초로 달에 역사적인 발자국을 남긴 해다. 같은 해 세계 물류산업에도 ‘인류의 달 착륙’ 못지않은 일이 일어났다. DHL이라는 회사가 세계 최초로 국제특송(International door-to-door express delivery)을 시작한 것이다. 창업자 세 사람의 이름 앞 글자를 따서 만들어진 DHL이라는 회사명은 이후 ‘물류’와 ‘특송’의 대명사가 됐다. DHL은 40여 년 만에 매출액 기준(82조 원)으로 전 세계 물류업계 1위에 올랐다.

16만여 개 기업이 난립하고 있는 한국 물류산업의 전체 매출액은 모두 합쳐 90조 원 남짓이다. 영세 소규모 업체까지 모두 긁어모아야 간신히 DHL의 매출과 비슷해진다는 얘기다. 김대중 정부 이후 역대 정권마다 물류산업을 국가 미래 성장 동력으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제대로 된 글로벌 물류기업 육성은커녕 중국 등 경쟁국에 비해 물류산업 경쟁력이 뒷걸음질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 ‘기술과 정보화’에 강점, ‘물적·제도적 인프라’ 취약

한국 물류산업이 성장 동력을 얻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해양수산개발연구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물류산업은 정보화와 자동화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하는 정도, 즉 ‘기술요인’, 복합수송이 쉽고 다른 지역과의 연결이 잘돼 있음을 뜻하는 ‘물류연결성’ 등에 강점을 지닌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창고 시설과 같은 물적 인프라, 정부 지원과 제도적 시스템, 국내 물류시장의 규모와 성장성 등에 취약점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 결과를 종합해 보면, 한국 물류산업은 정보화와 자동화에 힘입어 동북아 지역에서 우위를 차지할 만한 잠재력은 갖고 있다. 하지만 낙후된 창고시설, 효율적이지 못한 법과 제도, 전·후방 산업과 연계되지 못해 발생하는 부가서비스의 부재, 유연하지 못한 노동시장 등으로 경쟁력 확보가 어렵다는 분석이 있다. 물류산업 관련 18개 분야별 경쟁력 평가에서 정부 지원 12위, 도로수송망 13위, 금융시장 14위, 노동시장 15위 등이었다. 부가가치서비스와 법률시스템, 창고시설 등은 각각 16∼18위로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정부가 제도와 인프라 정비만 잘해도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얘기다.

○ 나는 글로벌 기업, 기는 한국 물류

국내 물류기업의 성장은 지지부진한 상황이지만 글로벌 물류기업과 경쟁국의 물류산업은 날이 갈수록 ‘대형화’하며 신흥시장을 중심으로 맹공을 펼치고 있다. 특히 글로벌 물류기업들은 그동안 해외 진출과 동시에 진출 국가의 기업들을 적극적으로 인수합병(M&A)하면서 성장해왔다. 1위 업체인 DHL 역시 1998년부터 약 3년에 걸쳐 민영화된 독일 우정국과의 인수합병 등을 통해 지속성장을 거듭했다.

이 같은 글로벌 물류업체들의 적극적 M&A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현대경제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경기가 회복 기미를 보이기 시작한 2010년 상반기에만 물류업계의 글로벌 M&A 건수는 66건(290억 달러)으로 2009년 같은 기간(36건)보다 크게 늘었다. 특히 지역적으로도 아시아와 오세아니아 지역의 물류업체에 대한 M&A가 활발해지고 있다. 이성우 한국한국해양수산개발원 국제물류연구실 실장은 “세계 각 국 간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 활발해지고 글로벌 물동량이 증가하면서 글로벌 물류기업들의 대형화와 물류기업 간 네트워크 강화가 이뤄지고 있다”며 “하지만 국내 물류기업은 16만여 개 업체가 난립하고 있을 뿐 글로벌 네트워크가 취약하고 서비스 범위도 좁아 매출과 수익성 측면에서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 물류기업은 국가 ‘지원’을 먹고 자란다

글로벌 상위권 물류기업들의 성장에는 ‘고객 중심 서비스’와 차별화된 전략, 그리고 활발한 M&A 등이 중심에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각국 정부와 자국 제조기업 등의 적극적인 지원도 큰 몫을 했다. 글로벌 물류시장이 국가 간 전쟁터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의 UPS는 미국 우정(郵政)시장과 특송시장을 장기간 독점할 수 있는 기반을 개별 주정부로부터 받았고, 쿠웨이트의 글로벌 기업 Agility는 군수 및 정부 조달시장, 정부 통관시스템 시장을 장기간 부여받아 안정적인 성장을 할 수 있었다. 일본 기업들은 동남아지역 국제협력사업 시 해당 지원 자금을 현지 교통 및 물류 인프라에 투자하고 해당 시설의 연계사업에 자국 기업을 진출시킨 정부의 지원을 업고 성장했다. ‘세계화’의 강도가 세질수록 국가 경쟁력의 핵심에는 물류산업이 자리하게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한국은 물류산업에 대한 행정적 정의조차 제대로 돼 있지 않아 일관된 정책 추진이 곤란한 상황이다. 국내 물류 관련 법 제도 역시 물류정책기본법, 물류시설 및 운영에 관한 법률, 화물자동차운수 사업법 등 육상물류, 항만, 해운, 항공 등 분야별로 산재해 있다. 주관부처 역시 제각각이다. 컨테이너 운송업과 택배 등의 업종은 아예 업종을 규정하는 별도의 법적 근거 자체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적극적인 M&A를 통한 ‘대형화’와 성장은 꿈꾸기 어렵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국내 대형 물류업체 관계자는 “국내에서의 성장과 해외 진출을 위한 지원, 글로벌 M&A를 활성화할 수 있는 분위기와 여건 등 3박자가 맞아 떨어져야 국내 물류산업의 성장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일본, 대만 등의 제조기업이 해외 진출 시 물류는 거의 100% 자국 기업에 맡기고 있다는 사실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 대형 물류업체들 “법인세 공제 혜택 3%→5%로 늘려달라” ▼

네트워크 산업인 물류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대형화’ ‘규모화’가 기본 요건이다. 정부도 2006년 ‘종합물류기업인증제’를 도입하면서 본격적인 글로벌 물류기업 육성에 시동을 걸었다. ‘될성부른 나무’를 선정해 집중 육성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대한통운(현 CJ대한통운) 등 6개 업체가 1차 선정되고 난 뒤 탈락한 업체들의 집단 반발 등으로 60여 개 업체가 ‘나눠먹기식’으로 재선정되면서 지원책은 유명무실해졌다.

정부는 최근 다시 한 번 글로벌 물류 기업 육성을 위한 지원책 마련에 나섰다. 8월 국토교통부는 ‘물류산업 선진화 방안’을 발표하고, 앞으로 5년간 물류산업을 연평균 10% 이상 성장시키겠다면서 다양한 세부 과제를 정했다.

우선 적극적인 연구개발(R&D)로 화물 적재 3차원 시뮬레이터 등 신기술을 통해 고도화된 정보기술(IT) 물류 일자리를 창출하고, 현재 건설 중인 10곳의 물류 단지를 차질 없이 조성할 계획이다. 2017년까지 개발될 물류단지만 해도 650만 m²에 이른다. 대기업이 물류 자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불공정 관행도 개선하면서 물류기업이 화주(貨主)와 함께 해외 동반진출에 성공한 모범 사례도 발굴하고 지원해 나가기로 했다.

국내 물류기업들은 이 같은 정부의 지원책을 반기면서도 실질적인 지원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국내 한 대형 물류업체 관계자는 “현재 종합물류기업 인증을 받은 업체들의 법인세 공제 혜택을 일반 화물기업들과 똑같은 3%에서 5% 정도로 늘려 차별화하는 등의 실질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택배업이나 컨테이너 운송업 등도 명확하게 법적으로 정의해 주고 물류기업 간 제휴와 인수합병(M&A)을 촉진하는 금융과 정보인프라 지원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임영태 국토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 등 신흥시장에 국내 물류 기업들이 적극 진출할 수 있도록 해당 국가의 물류정책과 규제에 대해 정부가 파악해 알려주는 종합적인 서비스와 솔루션을 컨설팅해 주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승연 기자 seanko@donga.com
#한국 물류#물류산업#DH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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