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충남][강원]송년회의 낯선 손님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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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친이 이 학교 출신”… “어머니가 근처에 살아”
지방선거 겨냥 출마예정자 북적… 축사 순서 싸고 실랑이 벌이기도

“저는 비록 A고교 출신은 아니지만 제 어머니가 A고교 근처에 사셨어요.”

“제가 나온 고교와 A고교는 예부터 친근한 관계였어요.”

17일 오후 대전 서구의 한 컨벤션센터. 150여 명의 동문이 참석한 가운데 A고교 정기총회 및 송년회가 시작됐다. 매년 열리는 행사지만 올해에는 ‘낯선 손님’ 5, 6명이 무대 앞좌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들은 다름 아닌 내년 6·4지방선거 대전시장과 교육감, 교육위원, 구청장, 시의원 등에 출마할 뜻을 밝힌 후보군. 행사 주최 측은 이들을 일일이 소개한 뒤 간단한 축사도 부탁했다. 이유야 어찌됐든 ‘손님’들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16일 서구 만년동에서 열린 한 단체의 송년의 밤 행사에도 10여 명의 후보군이 참석했다. 행사 주최 측 관계자는 “생각하지도 않았던 불청객이 너무 많아 축사를 모두 생략하자 만찬시간에 테이블을 돌며 명함을 돌리기도 했다”고 전했다.

내년 6월 지방선거 후보군들에게 연말 송년회 등 각종 모임은 그야말로 ‘대목’이다.

많은 이를 손쉽게 만날 수 있는 놓칠 수 없는 자리다. 게다가 축사 기회까지 주어지면 금상첨화다. 출마 의사를 밝히는 것은 선거법 위반. 따라서 이를 지키면서도 짧은 인사말에 자신의 인상을 강하게 인식시켜야 한다. 그러다 보니 ‘아내가 ○○ 출신이다. 저는 ○○고교(중학교)를 좋아한다. 친한 친구가 여기에 있다’는 등의 연고(緣故)를 내세워야 한다.

17일 행사장에서 만난 한 구청장 출마 예정자는 “연말에는 눈코 뜰 새가 없다. 오늘도 벌써 여섯 번째”라고 했다. 그는 “현직 구청장들이 ‘현장 점검’이라는 명목으로 많은 유권자를 만날 수 있는 것에 비하면 여건이 훨씬 불리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전의 호텔, 예식장, 컨벤션센터 등 대형 연회장에는 모임 유무를 묻는 전화가 쇄도하고 있다. 유성 지역의 한 호텔 관계자는 “연말이 되면서 모임이 있는지를 묻는 후보군 측근들의 전화가 잇따르고 있다”며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참석 인원”이라고 말했다.

종종 말썽이 빚어지기도 한다.

이달 중순경 서구 둔산동에서 열린 한 단체의 송년회에서는 출마자들끼리 축사 순서를 놓고 실랑이를 벌여 주객이 전도되는 모습도 보였다. 또 다른 고교동문 송년회에서는 동문회장이 특정 후보군에게만 축사를 하도록 해 원성을 사기도 했다.

충남의 한 기초의회 집행부 의원은 17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한 달여간 행정감사 및 예산심의를 하고 있지만 정작 행정감사는 외면하고 내년 선거를 위해 동네 행사만 찾아다니는 의원이 많다. 참으로 한심한 생각이 든다”며 동료 의원을 꼬집었다. 그는 “이 같은 부실 예산심의 때문에 예산 5223억 원 중 단 1000만 원만 삭감됐다”고 덧붙였다.

최근 강원 춘천시에서 열린 한 소규모 행사에서는 이광준 시장과 전주수 부시장이 나란히 참석하는 이례적인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 시장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강원도지사에, 전 부시장은 춘천시장에 출마를 선언한 상태. 두 사람은 지난달 관내에서 열린 노인 게이트볼 대회에도 나란히 참석해 여론의 질타를 받았고 행사 참석 문제로 갈등을 빚기도 했다.

대전=이기진 doyoce@donga.com     
춘천=이인모 기자
#지방선거#축사#행사#출마 예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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