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7번방’ 수감생활은 어땠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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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영등포교도소 체험프로그램

내년에 철거될 예정인 서울 구로구 고척동의 옛 영등포교도소. 높다란 담벼락과 감시용 망루가 수형자들을 외부와 갈라놓았다(왼쪽 사진). 수형자들은 수용동 내부의 철문으로 막힌 방 안에서 참회와 회환의 세월을 보냈다. 서울 구로구 제공
내년에 철거될 예정인 서울 구로구 고척동의 옛 영등포교도소. 높다란 담벼락과 감시용 망루가 수형자들을 외부와 갈라놓았다(왼쪽 사진). 수형자들은 수용동 내부의 철문으로 막힌 방 안에서 참회와 회환의 세월을 보냈다. 서울 구로구 제공
끼익 소리를 내며 육중한 철문이 열렸다. 한 발 들어서니 등 뒤로 쾅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에 가슴이 철렁했다. 또각또각 구둣발 소리가 울려 퍼지는 음산한 복도를 걸었다. 잿빛 콘크리트로 두른 14m² 크기의 작은 방이 눈앞에 나타났다.

서울 구로구 고척동 옛 서울남부교정시설을 12일 찾았다. ‘영등포교도소’로 알려졌던 곳. 서울 구로구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내년 철거에 앞서 19일부터 약 한 달 동안 현대사의 영욕을 고스란히 간직한 옛 영등포교도소를 일반인에게 공개할 계획이다. 대다수의 국민은 평생 구경하기 힘든 실제 교도소 내부 곳곳을 직접 볼 수 있다.

옛 영등포교도소·구치소 터는 내년 상반기에 착공에 들어가 2016년엔 주상복합 대형 스트리트 쇼핑몰을 비롯해 구로 제2행정타운, 아파트, 청소년 테마공원 등을 조성한다. 구로구 관계자는 “이 지역을 서울 서남권의 새 중심지로 육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1949년 부천형무소로 시작한 영등포교도소는 1980년 행정구역이 구로구로 바뀌었지만 같은 이름으로 불렸다. 서울남부교정시설이 2011년 구로구 천왕동으로 이전한 뒤 영등포교도소는 빈 시설이 됐다. 1974년 긴급조치 1호 위반 사건의 첫 번째 피고인인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김지하 시인 등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들이 이곳에 머물렀다. 1980년대 학생운동에 투신한 수많은 젊은이가 이곳에서 영어(囹圄)의 세월을 보냈다. 고문기술자 이근안 씨,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 씨 등도 이곳에 수용됐다.

교도소 정문 옆 쪽문을 통해 검색대를 통과하자 면회실이 나타났다. 철창 사이로 마이크를 통해 수형자와 가족들이 대화를 나누는 곳. 11월 개봉한 영화 ‘친구2’의 면회 장면도 여기서 촬영했다. 면회실에서 안으로 들어가니 운동장이 나타났다. 사방에서 고층 아파트와 초등학교 등이 교도소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곳에 갇힌 사람들도 힘들었겠지만 하필 교도소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살게 된 주민들도 힘들었을 터. 주변 아파트 벽면에는 교도소가 보이지 않도록 창문에 가림 시설을 했던 흔적이 아직 남아있다.

조리장, 취사장이 있는 후생동을 지나면 수용동(사동) 주 복도가 보인다. 차폐가 되지 않도록 쭉 뻗은 복도가 전력질주를 해도 될 정도로 길게 나 있다. 입구에는 ‘따뜻한 말 받고 보니 따뜻한 정 주고 싶네’ ‘위로 되는 말 한마디 용기 되고 힘이 된다’ 등의 글귀도 보였다.

수용동 내부로 들어갔다. 철문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리자 정원 6명, 최대 16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14.5m²의 방이 보였다. 내부에는 문 없는 화장실과 벽장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문 앞에는 수형번호와 이름, 죄명, 비품 목록표와 신문구독 목록표 등이 적혀 있다. 2.18∼2.34m²에 불과해 돌아눕기도 힘든 독방도 볼 수 있다.

한두 시간 머물렀을 뿐인데 교도소 정문을 나서자 마치 수감생활을 마치고 출소한 듯한 기분이었다. 19일부터는 교도소를 직접 둘러보면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내년 1월 16일까지 매주 목요일 오후 2∼5시에 해설을 들으며 교도소 곳곳을 견학할 수 있다. 반응이 좋으면 프로그램 기간을 연장할 계획이다. 자세한 내용은 구로구청 도시개발과(02-860-2279)에 문의하면 된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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