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건강한 토론 문화로 이어지길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8일 03시 00분


전국 대학가에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널리 퍼지고 있다. 고려대에서 한 대학생이 사회적 이슈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며 대자보를 붙인 것을 시작으로 서울 인천 강원 전북의 대학들에서 호응하는 대자보들이 나붙고 있다. 철도 민영화와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의혹을 비판한 페이스북의 ‘안녕들 하십니까’ 계정에는 5일 만에 25만 명 이상이 ‘좋아요’를 표시했다. 보수 성향의 학생단체인 한국대학생포럼은 북한의 인권 유린과 철도 파업을 비판하며 ‘이런 시국에 어찌 안녕할 수가 있겠습니까’라는 대자보로 맞불을 놓았다. 시국 문제를 놓고 대학생들 사이에 관점이 갈려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대학생들이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바람직하다. 권위주의적 체제를 경험해 정치 사회적 관심이 컸던 기성세대와는 달리 지금의 20대는 비교적 풍요로운 시대에 태어났다. 외동아들 외동딸로 자라나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편이다. 젊은이들의 정치적 사회적 무관심이 문제이지, 현실에 대한 적극적인 의견 표시를 나무랄 일은 아니다.

그러나 논쟁은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 일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정부 정책은 ‘철도와 의료 민영화’라고 전제하고, 민영화가 되면 요금이 10배 넘게 뛸 것이라는 ‘괴담’ 수준의 주장이 오가고 있다. 정부는 수서발 KTX를 민영화하지 않을 것이며 의료 정책은 영리법인화와 다르다고 거듭 확인했다. 사실은 신성하고 의견은 자유롭다는 말이 있듯이 정확한 사실 위에서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

둘째, 도식적인 진영 논리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 논란, 코레일 자회사 설립, 밀양 송전탑 건설, 북한 인권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내 편의 주장은 무조건 옳고 상대방의 주장은 들을 가치도 없다고 비난해서는 안 된다. 토론은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대안을 찾기 위한 수단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합리적인 공감대를 찾으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 기성세대도 이번 논쟁에서 느끼는 바가 있어야 한다. 취업을 위해 수십, 수백 곳에 입사원서를 내야 하는 젊은이들의 분노와 좌절감이 대자보 현상을 통해 표출되고 있다. 정당들이 총선에서 청년 비례대표를 만든 것은 젊은 세대의 요구를 정치에 반영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가 정책으로 결실을 봤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정부와 국회는 청년들의 좌절감을 해소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줄 수 있는 정책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

젊은이들끼리 때로는 정교하지 않은 논리로 치고받는 모습이 기성세대에게는 다소 생경하고 거북할 수도 있다. 이들의 잘못은 잘못대로 지적하되 그 뒤에 숨어 있는 갈증을 해소해 주는 일은 기성세대의 몫이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